마친 아들이 넙죽 엎드려 절을 한다. 숙여진 고개 너머로 듬직하게 솟은 등을 보니 녀석이 언제 저렇듯 자라서 군대엘 가나 싶어 눈물이 핑 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부둥켜안고 눈물을 찍어내는 남들처럼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했었는데 전장에 나가는 것도 아니요 영영 못 볼 아들도 아닌데 눈앞이 흐려져 보이질 않는다. 길을 떠나는 자식 앞에 눈물을 보이다니. 얼른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다.
“몸조심하고 잘 다녀오너라.”
“걱정하지 마세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붉어진 눈으로 보아서인지 씨익 웃으며 대문을 나서는 아들의 눈에도 얼핏 붉은 빛이 감도는 것 같다.
피를 토하듯 소쩍새가 울었다. 빼곡한 도시 한가운데 난데없는 카랑카랑한 낯 선 새소리가 간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알토란같은 외아들을 논산훈련소로 보내놓고 남들 다 가는 군대일 뿐이라며 애써 태연한 척 했었는데 어쩌면 그리도 절절하게 울어대는지 길 잃은 소쩍새 울음에 온밤을 뒤척였다.
평생에 한 가지 부러웠던 것이란 친구들이 현역병으로 제대하는 일이었다며 아들의 입대에 용기를 실어주던 방위병 출신 남편도 막상 훈련소로 보낸 아들이 안쓰러운지 불 꺼진 텅 빈 방에 우두커니 서 있다. 하루가 스러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아들의 훈련소 생활에 걱정이 쌓인다. 힘들다는 행군을 어떻게 견뎌낼지, 어렵다는 사격훈련과 매섭다는 화생방훈련은 또 어떻게 버텨낼지 가슴 한 쪽이 아리다.
지친 해가 서산마루에 길게 뻗쳐 누울 때면 지금쯤 뛰고 구르는 고된 훈련에 앓아 누운 건 아닐까 애가 마른다.
신문을 읽다가도 군에 관련된 뉴스라면 하나도 놓치지 않고 곱씹으며 아들을 보듯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읽어진다. 이라크가 어쩌고 테러가 어쩌고 북한 핵 문제가 어쩌고 서해안 북한 경비정이 어쩌고, 읽을수록 외아들을 군에 보낸 어미의 가슴은 답답해진다. 대한민국 남아라면 당연히 군대를 가야 한다고 망설임 없이 아들의 등을 떠밀었건만 남자로 태어난 이유 하나만으로 금쪽같은 아들을 힘든 훈련소로 내몰았단 생각에 아들을 낳은 일이 처음으로 은근슬쩍 후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