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일본문화개방 1호라는 의미를 달고 우리나라에 소개된 일본 영화 [하나비]의 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가족의 정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가족이란 보는 사람이 없으면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싶은 존재들”이라고 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의외의 답변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일면 공감하는 구석이 없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 마음 속 깊숙한 곳의 감춰둔 어떤 부분을 그로 인해 들켜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가족이란 기쁨과 무거운 짐을 번갈아 주면서 평생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고, 무엇보다 한번 맺어지면 수정이 불가능한 존재들이다. 마음에 안 들어 떨쳐버리려 해도 결코 분리될 수 없기에 가족은 한 개인에게 숙명이자 운명과 같은 존재이며 그래서 더욱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국가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있다면 병역의무라는 무거운 짐을 지우는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를 택하고 싶다는 것이 모든 젊은이들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 한 개인에게 숙명이듯 이 나라에 태어난 것 또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할 숙명이자 운명인 것이다.
이런 숙명이 싫어 국적까지 바꾸겠다는 사람들이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5월 4일, 병역의무를 마쳐야 국적을 포기할 수 있도록 한 국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우리나라 국적을 포기하겠다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병역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고, 양심을 속이고 이번에는 국적까지 헌신짝처럼 내던져버리니 병무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청장으로서 이런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심정이 편치 않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이는 극히 일부의 사례일 뿐이며 아직도 우리 주위엔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여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병역의무를 이행하려는 건강한 젊은이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 해 우리 병무청이 처음으로 실시한 [건강한 병역의무이행 수기 공모]를 통해 우리는 병역의무 이행을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당당한 젊음의 통과의례로 인식해 기꺼이 받아들이고 군복무기간을 지혜롭게 활용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훨씬 많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