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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떠오르는 어릴 적 희미한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이었던 것 같다. 이웃집에서 전을 부치고 고깃국을 끓이는데 그 구수한 냄새가 온 마을에 진동해 어머니께 “혹시 옆집 형이 장가 가느냐”고 물었더니 “○○가 내일 군대에 간단다”고 하셨다. 저녁 무렵이 되니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고 막걸리 파티가 벌어졌다. 얼마 후에는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간간이 옆집 아줌마의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그때가 60년대 후반이니 30년도 훨씬 지난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들을 군에 보내는 부모의 심정은 다를 바 없겠지만, 당시만 해도 6·25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군에 가는 것은 곧 죽으러 가는 것”이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었고, 죽지는 않더라도 잘못하면 불구의 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욱 안타깝고 걱정스러웠을 터. 그러나 나라의 명령이 지엄해 아니 보낼 수는 없고 먹거리가 귀하던 때니 배부르게 실컷 먹여서라도 보내고 싶은 마음에 마을에선 잔치 아닌 잔치가 벌어졌던 것이다.
지난 해 9월 둘째 놈이 동반입대신청을 해 친구와 함께 입영하던 날, 입소식을 지켜보며 달라진 입영문화를 새삼 실감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며 작별의식을 치르는 모습이 외양만큼은 마치 여행을 가는 듯한 분위기였다.
육군훈련소 부근에서 30년 동안 입영장정들의 머리를 깎아왔다는 한 이발사는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머리를 깎는 장정은 물론 함께 온 가족들도 울고 머리를 깎는 나도 따라 울어 이발소는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는데, 90년대에 들어서니 우는 사람보다 웃는 사람이 많아지고 지금은 웃는 사람들뿐」이라고 했다.
입영문화는 달라졌는데
국군이 창설되고 징집제도가 시행된 지 반세기가 지났다. 그동안 병무행정 또한 숱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다. 징병검사 방법이 완전 전산화되고 입영문화도 달라졌다. 그러나 [입영통지서]만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이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다.
게다가 병무행정의 주 고객은 최첨단 문명의 이기로 무장한 이른바 신세대인데 지금의 입영통지서는 그들의 사고나 취향과는 동떨어져 있는 감이 있다.
병무청에서는 지난해부터 병역의무이행에 대한 거부감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고 병무행정에 대한 친근감을 가질 수 있도록 젊은이들의 정서와 문화를 최대한 반영, 새로운 [입영통지서]의 제작을 추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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