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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해 알지 못했던 때 두려움이란 없었다. 약간의 “깡”만 있으면 되었다. 이것으로 모든 준비는 끝났다. 배고프고 힘든 건 그 다음이었다.
이슬 피할 곳만 있으면 어디든 나의 잠자리가 되었다. 밤늦게 도착할 땐 다리 밑에서 자기도 했다. 학교에서 잘 땐 등교 전까지 짐을 꾸려야 했고, 다리 밑에서 잘 땐 똥을 조심해야 했다(다리 밑에 똥 많다~^^.) 교회에선 새벽예배에 참석하는 조건으로 재워주는 곳도 있었으며 어떤 목사님은 찾아와 줘서 오히려 자기가 더 고맙다고 하셨다. 끼니는 거의 밥으로 해결하려 했고 아침을 충분히 하고 남은 밥을 고추장만 넣어 비벼 주먹밥을 만들어 걷다가 배가 고프고 그늘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이 그곳에서 점심 한끼를 간단히 해결했다. 저녁은 거의 라면으로 해결하고 몸을 쉬게 하였다.
이렇게 시작한 10일 간의 여행은 해안도로를 타고 영덕, 석류굴, 울진 동해, 정동진, 주문진, 속초 그리고 서울을 거쳐 ‘동강’으로 해서 대구로 돌아왔다. 우리의 주요 이동수단은 도보와 히치였지만 여의치 않을 땐 대중교통도 이용하였다(특히 시내에선 히치가 어렵다). 시내버스 무임승차는 말만하면 가능하였고 시외버스는 배상문제 때문에 힘들거라고 하였지만 나는 시외버스도 무임승차하였다. 나의 말빨이 통한 것이 아니라 그때 상황이 절박하긴 했었다. 설악산 등반 후 속초의 조양교회에서 하룻밤 묵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미시령을 넘는데 비바람이 범상치 않았다. 소규모 터미널에 도착하여 뉴스를 보니 태풍속보였다. 그때 태풍이 제8호 나크리였다.
우리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대책을 강구했다. 시외버스 무임승차는 거의 못한다는 것은 무전여행 준비기간에 알고 있었던 터였다. 그렇다고 비상금과 그 흔한 현금카드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무전여행에 충실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왔기 때문이다. 별 뾰족한 수 없어 버스 출입문 앞에서 표를 받는 아주머니한테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학생인데...무전여행을 하고 있다면서...’ 무슨 돈도 없이 여행을 하냐면서 막 화를 내시고 기사분하고 쏙닥쏙닥 하시더니 학생 맞냐면서 학생증 확인 후 무임승차를 할 수 있었다. 그때 우리의 모습은 학생이 아니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그을린 피부, 땀냄새, 이불이 삐져나온 배낭 등등 노숙자에 더 가까웠으리라.... 이렇게 힘들게 버스를 탄 반면 밤을 이용해 동해에서 정동진까지 무전여행이라는 목표 아래 도둑기차를 타면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그저 편하게 간 기억도 난다. 가는 지방마다 국립공원이나 유원지는 무조건 들리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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