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의 아침이면 부모님들은 우리 동네 유일한 일터인 곱돌공장 -광산이라고 불리던 곳-에 가서 일을 했습니다. 우리들은 늘 혼자였지요.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은 저녁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늘 놀 거리를 스스로 만들었지요. 앞산과 뒷산에서 내려오는 계곡은 지금의 잘 다듬어진 스키장과는 비교가 되지는 않지만 우리 동네에서 제일 잘나가는 스키장이었습니다. 비료포대속에 볏짚을 넣고 산중턱에서 내려오는 그 모습들은 너무나 멋진 스키어들이었지요. 가끔 삐져나온 뾰족한 돌맹이에 엉덩이가 시퍼렇게 되서 통증이 심할 때도 있었지만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산촌의 유일한 논에는 물을 대서 전원 스케이트장을 만들고 광산에서 주워온 쇠조각을 갈아서 스케이트를 만들어 얼음지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게 작대기를 응용해서 불에 앞부분을 휘게 해 편을 나누어 아이스하키도 했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하얗게 뒤덮인 눈 속에 파묻혀 몇 채 안되는 초가집속에서 너무나 즐거운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버스가 하루에 왕복 2회 운행을 하다보니 시내 구경을 하고 싶으면 부모님 장에 나갈 적에 졸라서 한번씩 나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겨울에 눈이 와서 우리 동네 초입의 마즈막재라는 고개를 버스가 들어오지 못하면 시내로 학교 가는 중·고등학생들은 걸어서 시내를 나가야 하는데, 그 모습이마치 피난 가는 것 같았습니다. 학교에 도착하면 이미 점심시간일텐데... 초등학생도 고개 두개를 넘어야 학교에 갈 수 있으니 참으로 산골 오지마을이었습니다.

지금은 먹고 자고 하는 문제는 아무 일도 아니지만 그때는 나무를 해서 저녁때에 집집마다 아궁이에 마른 가지를 넣어 밥도 하고 방안을 따뜻하게 해주는 추억의 한증막도 생각이 납니다. 방안에 들어가면 부엌에 가까운 곳은 엄청나게 뜨거워 색깔도 변해 있고, 방안에 추억의 메주가 주렁주렁 달려있고, 조그마한 담요로 덮어져 있는 것은 요즘 아이들은 잘 먹지 않는 담부장이라고 하는 겨울철 최고의 보양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마솥의 용도는 우리에게는 희망 그 자체였지요. 가마솥의 펄펄 끓인 따뜻한 물은 우리들의 세면 세족에 엄청나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겨울철 산골마을 최고의 장면은 저녁때 가가호호 나오는 굴뚝의 연기의 모습이지요. 바람이 부는대로 연기의 모습이 일률적으로 같은 모습을 하며 재미있는 모습을 연출하곤 합니다. 마치 연 꼬리 같은 모습이었지요. 저녁이 어둑어둑해지면 어른들은 어느 한집에 모여 유일한 도박인 민화투를 하곤 했습니다. 우리들은 뭐가 그리 피곤했는지 일찍 잠이 들어 꿈속을 헤매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싸리나무 엮어서 만든 발이 어느 집을 가도 있었지요. 그것의 용도는 고구마 저장고 입니다. 겨울에 적적하고 출출할 때 고구마를 쩌 먹던지 아니면 지금은 볼 수 없는 화로에 넣어 구워먹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또한 아버지가 심부름을 가끔 시키면 동네의 유일한 마트인 구판장에 가서 막걸리를 주전자에 한가득 남아오는데 한번 호기심에 막걸리를 조금씩 먹다가 어린아이가 술이 취해 비몽사몽 하던 웃지 못할 일도 있었고, 친구들끼리 모여 있다 보면 호기심에 아버지가 담궈둔 살구주를 보고 그 안에 있던 걸쭉한 살구를 몰래 꺼내 먹다가 술에 취해 모두들 나뒹굴어져 모두가 그 자리에서 잠을 자던 그 모습들이 생각이 많이 납니다.

지금은 돌아 갈수는 없지만 그런 산골마을에서의 어린시절은 제마음 한구석에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함박눈이 내릴 때면 그때의 그 겨울이 무척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