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을 보냈던 동네는 80년대 초에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학교가 있던 곳을 포함해 3분의 2는 수몰된 지역입니다. 지금은 충주시에 편입되어 목벌동이라는 행정구역에 속해 있으며 다행히도 제가 살던 돈데미골 일부는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그때도 이렇게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바람도 나를 비웃으며 더욱 세게 불었고, 늑대인지 개소린지 푸념스런 울음이 온 동네를 더욱더 스산하게 했습니다. 호롱불 하나로 지탱하고 소변이라도 해결하려면 왜 그렇게 나가기가 싫던지... 무섭기도 하고 춥기도 하고 귀신이 잡아갈 것도 같은 밤이었습니다.

여섯 채가 옹기종기 사는 산골 마을 조그마한 동네는 눈이라도 내리면 한폭의 풍경화 같았습니다. 형, 누나들은 시내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눈이 내리면 집에 오지 못하는 적도 있었습니다. 하루에 몇 번 다니지도 않는 버스가 이런 날씨에는 어림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동네는 사방팔방이 산이었기 때문에 눈온날 아침에 학교 가는 길은 어린 나에게 너무 큰 고통이었습니다. 신발도 변변치 않고 - 그것도 아버지가 장날에 가서 막내아들이라고 특별히 사주신 부추 같은 털신이었습니다. 고개 두개를 넘어 산속 앙상한 나뭇가지 오솔길을 걸어가면 허름한 학교건물 하나가 스산하게 보입니다. 그래도 그 낡은 건물은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전교생이 육십 명이 채 안 되던 전형적인 시골 오지 초등학교. 지금은 폐교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지만, 나의 무지를 깨우쳐 주고 나에게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던 그곳이 그립습니다.

이 산골마을은 눈이 내리면 늘 1m 이상은 쌓였었습니다. 그러면 학교는 커녕 앞마당 나오기도 힘들었지요. 하지만, 우리는 유난히 겨울을 좋아했고 눈이 많이 내리면 기쁨은 두 배로 커졌습니다. 친구들 삼삼오오 모여서 철사로 만든 덫과 나무대기 한쪽을 뾰족하게 하면 창이 되는 원시적인 사냥꾼의 모습을 하고는 우리는 그 어린나이에도 뒷산을 헤치고 올라가서 사냥을 했습니다. 꿩은 어김없이 머리만 쳐 받고 날아가지도 못하니 식은 죽 먹기였고 산토끼도 좌우로 몰면 금새 잡혔습니다. 가끔 노루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연신 흐르는 콧물을 옷깃으로 훔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사냥을 하다보면 어느새 해는 지고 캄캄한 저녁이 되어 집으로 들어오곤 했지요. 집에 오면 추운데 싸돌아다닌다고 어머니께 지게 지팡이로 엄청나게 맞곤 했지만, 제가 잡아온 꿩이나 토끼를 어머니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태연하게 검은 솥에서 뜨거운 물 한바가지를 푸고는 털을 뽑아내고 맛있는 토끼볶음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식구들은 한 끼 포식을 하고 잠이 들곤했지요.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지금은 그 맛을 낼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