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 전반기는 제국주의와 공산주의가 창궐하던 시대입니다. 우리 나라와 비슷한 과정을 겪은 나라도 몇몇 있는데요, 가장 비슷한 경로를 밟은 나라가 베트남으로 보여집니다. 식민지에서 벗어나는가 싶었을 때 강대국에 의해 남과 북, 즉 민주주의 정권과 공산주의 정권으로 나뉘어진 거지요. 하지만 베트남은 이미 통일이 되었으니 지금의 우리와는 다릅니다. 한편 배경은 다르지만 닮은 나라가 있다면 ‘아일랜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운동, 독립과정에서의 내부 분열, 그리고 남북분단 상황. 우리가 ‘휴전’이라는 이름 아래 전쟁의 위협 속에 있듯, 아일랜드 역시 테러에 노출되어 있는 등 닮은 점이 많으니까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최근 개봉된 작품 중에서 가장 좋은 평점을 받고 있는 작가주의 영화입니다.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과정에서 벌어지는 잔혹함과 내부분열로 인한 형제간의 비극, 역사의 격동기에 휘말린 두 형제의 슬픈 운명이 지극히 냉정하고 적나라하게 표현됩니다. 단지 영어로 이름을 대지 않았다는 이유로 솜털이 보송한 소년을 부모 앞에서 무자비하게 죽이거나, 입에 담기도 참담한 고문을 하는 영국 군인의 잔인한 모습, 동네 동생을 배신자라는 이름으로 처형하거나, 형이 동생을 처형하는 모습 등 두 시간 내내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충격적인 모습이 관객을 팽팽하게 영화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이 영화의 미덕이 여기에 있습니다. 형제는 각기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선택합니다.형은 보수적인 공화국을, 동생은 급진적인 사회주의적 경향을. 그 누구도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투쟁하고 반목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의도는 ‘국가 혹은 민족을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에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행동방침을 정해야 할 때는 개인의 내면적인 신념에 따를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 한계성은 불완전하고 다종다양한 인간에겐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반목은 끊이질 않을 것이고, 인간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비극도 계속 될 수밖에 없는 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일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비극을 줄일 수 있는 방도를 역사에서 찾으려고 하는 거구요.

어떻게 보면 ‘아일랜드'는 우리보다 더 복잡한 사연을 가진 나라입니다. 우리는 민족이나 종교문제는 없습니다.
아일랜드는 12세기 이래 진행된 영국의 정복과 이주의 결과 인종적·종교적 혼합국이 되었습니다. 원래 원주민인 ‘게일족(켈트족)’이 살고 있던 아일랜드에 가톨릭 영국인이 온 것은 1169년 부터입니다(구잉글랜드인). 그러다가 1541년 헨리8세 때 종교개혁을 거친 신교도들이 들어오게 되고 얼스터에는 스코틀랜드인들도 들어옵니다(신잉글랜드인). 신잉글랜드인이 들어오고 몇 백년 동안 구잉글랜드인은 참정권을 포함한 시민권을 박탈당한 채 비참하게 삽니다.
1649년 크롬웰이 아일랜드의 무장봉기를 진압했을 때 아일랜드 인구의 4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