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우리 일행은 오늘 ‘안보관광’ 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는‘백마고지 전적관’으로 갔다. 백마고지는 휴전선(군사분계선)과 남방한계선 사이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들어 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고지 정상에서 펄럭이는 태극기는 이 고지가 우리 쪽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쟁 때 이 고지를 차지하려는 10일 간의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에서 고지의 주인이 24번이나 바뀌었다고 한다. 최후의 승자가 되었던 선배 군인들의 피와 땀은 부강한 이 나라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으리라. 이 전적관 안에는 그 전투에 참전한 군 지휘관 명단을 비롯한 각종 자료가 게시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은 그 가운데서 눈에 익은 이름을 보고 나서 마치 그 전투에 참전했던 용사처럼 가슴이 뿌듯했다. ‘ 00연대장 대령 전부일’ , 그분은 누구인가? 39년 전, 후암동 청사에 ‘병무청’ 이라는 깃발을 처음 올렸던 초대 병무청장님이 아닌가! 우리 일행은 그곳에서 머리숙여, 삼가 고 전부일 장군님의 명복을 빌었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순국한 국군장병들의 이름은 작은 글씨로 비문에 빽빽이 새겨져 있었다. 그 명단을 보면서 병우회장 신용욱님은 학창시절에 읽었던 모윤숙님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를 낭랑한 목소리로 읊조리어 우리 일행을 숙연하게 했다.

산 옆 외 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누런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향기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

안보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우리 일행의 표정에서 오늘의 일정에 만족하고 또 그 보람으로 가슴이 뿌듯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젊은이는 꿈을 먹고 살고, 늙은이는 추억을 먹고 산다.” 고 했다. 앞으로 우리 이마의 주름살은 하나 둘 더 늘어나고, 얼굴의 검버섯은 더 번져갈 것이다. 우리는 지난날 어려운 가운데 공직을 천직(天職)으로 여기고 젊음을 바쳐, 국가에 충성하고 또 국민에게 봉사했다. 우리는 그 추억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보람과 긍지로써 오래오래 우리의 가슴속에 새겨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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