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평야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것은 이곳이 유명한 겨울 철새 도래지라는 것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두루미와 재두루미 등이 겨울을 보내기 위하여 시베리아에서 이곳까지 날아온 것이다. 우리일행이 지나가는 평야에는 벌써 수많은 철새들이 평야를 뒤덮고 모이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는 또 다른 철새들이 대열을 이루어 군무를 하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철원지역은 현무암의 용암지대로 미지근한 온수가 나와서 겨울철을 보내려는 각종 조류의 서식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전쟁 후 이 지역은 민간인 통제지역이 되어 있다.따라서 이 지역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생태계가 온전히 보전 될 수 있기 때문에 각종 동식물의 낙원이 된 것이다. 민통선 안의 ‘토교저수지’등에는 ‘고기 반 물 반’ 이라는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다

철원군은 북녘을 볼 수 있는 평야전망대와 제2남침땅굴, 백마고지 전적관, 옛 노동당사, 월정리역 및 철새 탐조대 등을 연결하여 ‘안보관광 프로그램’ 을 만들어 하루 4차례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었다. 우리 땅에서 일어났던 전쟁의 참상을 직접 보지 못한 전후 세대에게 좋은 교육장이 된 것이다. 내가 병무청 연수원의 책 임자로 있을 때 이곳 안보관광을 처음 이용했다. 남북분단과 전쟁이 남긴 여러 유적과 유물, 그리고 국군이 나라를 지키는 현장견학등 병무담당 공무원의 산 교육장으로 적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병무청 및 전국 시군구에서 왔던 직원들은 이곳 안보견학을 마치고 큰 감동을 받았다.

옛 노동당사의 탐방은 바쁜 일정 때문에 그 건물 앞 도로의 버스안에서 눈요기로 대신해야 했다. 이 건물은 전쟁 전 철원읍내 건축물로 유일하게 남아 들녘 한편에 외롭게 서 있었다. 나는 군복무시절 철조망에 둘러 싸인 이 건물을 먼발치서 처음 보았으나 10여년 전에는 직접 건물내부에 들어가 본 적도 있다.
외부 벽에는 총포탄을 맞은 흔적이 있었으며 건물내부는 좁고 음침한 느낌마저 들었다. 전쟁 전에 이 건물은 농민을 수탈한 본거지로 알려졌으나 수복 후 건물 주변에서 인골, 실탄과 철사줄 등이 발견 되었다고 한다. 공산치하에서 수많은 반공인사(反共人士)들이 이 건물 안에서 갖은 고초(苦楚)를 당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지금은 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쓸쓸하게 서서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4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