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 23:00
여느 때와 같이 잠자리에 들면서 유난히 불쑥 나온 아내의 배를 매만 지며 누리(태명)에게 비록 거친 음성이지만 나름 부드럽게 아빠의 목소 리를 들려주면서 일주일 후에 만나자는 말을 건넨다.
D-day 01:00
출산시기가 다가오면 아기의 꿈을 많이 꾼다고 하던데 오늘따라 이상하 게 아기가 나오는 꿈을 여러차례 꾸면서 행복한 단잠에 다시 빠져든다.
D-day 05:00
소풍가는 날도 아닌데 아내가 이른 아침부터 수선을 떤다. 화장실을 부산하게 오가며 이리저리 살피더니 걱정스러운 말투로 한마디 던진다.
“빨리 준비해라”
잠결에 오늘 날짜를 재빨리 계산해보지만 출산예정일은 아니다. 오늘 오후에 병원진료를 예약해놓은 터라 아침부터 저렇게 안절부절 못하는
아내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잠결에...
불현듯 생각 하나가 스쳐지나갔다. 드디어 내가 아빠가 되는 날이구나’아직 잠에서 덜 깨어 침대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희미하게 샤워하는 물줄기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서둘러 꿈속에서 깨어나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겼다. 첫 출산이어서 그런지 아내는 다리 밑으로 흐르는 양수를 보면서 울먹거리고 아직은 서툰 예비아빠인 탓에 그 모습을 보면서 미리 짜 놓은 출산 당일 준비항목 및 시간계획은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덩달아 우왕좌왕 했다. 그때까지는 출산이 이렇게 힘들고 긴 여정이라는 것을 우리 둘 다 예상치 못했다.
대충 입원준비물을 챙기고 병원으로 출발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가는 길마다 훼방을 놓는 신호등에 살짝 짜증이 나면서 나의 차에도 사이렌 하나쯤 달려있었으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도착해 분만실로 곧장 달려가니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도착한 다른 사람들이 사랑스런 아기를 기다리며 이날만큼은 지루하지 않은 즐거운 기다림을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