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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이 장면에서 또 다른 아이디어의 신선함을 보게 하는 대목은
마리나의 역할이다. 처음엔 마리나의 등장을 뻔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정령들에게 취하지 않는 여자를
등장시킴으로써 위험에서 빠져나오게 하고 신밧드로 하여금 마리나를 새롭게 볼 수 있게 하는 이중
효과를 보았다는 점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로렐라이나 사이렌 같은 이야기가 뱃사람들에게서
나온 이유도 알 듯 하다. 남자들뿐인 거친 바다 생활에서 암초에 부딪히거나 거센 소용돌이에 말려들
때 고단한 인생을 보상받듯 그런 환각적인 생각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치 사막에서 신기루를
보듯.
‘세이렌의 유혹’을 제일로 꼽는다면 다른 장면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실 이 영화에는
아름답거나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그림이 가득하다. 영화초반 빛나는 보랏빛 바다나 강렬한 주황색
돛의 화려함만으로도 빠져들기 시작하는데 동화처럼 환상적인 도시 시라큐스의 전경에는 그만 넋을
잃고 만다.
신밧드와 마리나가 방패를 썰매인 듯 타고 제트기처럼 얼음산을 미끄러져 내려올 때 속도가 주는
쾌감은 삼복 더위도 한 순간에 날려버릴 기세다.
 지구의
끝 장면은 또 어떤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신화를 잃어버리는 인간. 발이 부르트도록
돌고 돌아봐야 제자리이고, 비슷한 사람들에 식물과 동물은 인간에게 정복될 수 있는 그렇고 그런
대상 밖에 되지 않는다니, 이 얼마나 재미없는 세계인가.
“거봐, 지구는 평평하다니까.”하며 내기에서 이긴 선원이 의기양양 돈을 걷는 모습은 그래서 유쾌하다.
지구의 끝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한번쯤 상상해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 될 것 같다.
이렇게 이 영화는 신밧드라는 아라비안 나이트 인물을 하드웨어로 택하고
있지만, 소프트웨어는 불화의 여신 에리스나, 사이렌, 다몬과 피티아스의 우정 같은 그리스 신화의
요소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신화를 읽으면서 상상했던 내 이미지와 영화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견주어 보고 평가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하지만 상영시간 내내 눈을 호사롭게 한 비주얼이 빈약했다면 신화를 해독하는 과정도 이렇게 재미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한다. ‘보이기 영화’의 진수인 이 영화는 트래디지털(Tradigital) 기법으로
이 같이 매력적인 화면을 만들었다고 한다. 트래디지털은 전통적 기법을 뜻하는 Tradition과
디지털 (Digital)을 합성한 단어, 손 작업의 정교함과 컴퓨터 그래픽의 유려함, 그 장점을
결합한 기법이다.
가슴 두근거리며 만화영화 보기, 드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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