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수목의 설명 과 지형에 얽힌 역사와 전설에 이르기까지 할머니의 재미있는 입담은 산행의 고단함마저 잊게 했다. 탐방로 주변의 풀 한포기, 돌 한조각 조차 소중히 보듬는 할머니를 보며 이곳 거문오름을 우리 후손들에 게까지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물려줄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든다. 드디어 기다리던 제주 똥돼지다. 오늘 점심 역시 시장이 반찬으로 더해졌다. 평소 먹던 고추장 불고기였지만 역시나 재료가 다른 탓인지 입안 가득 씹히는 고기맛이 달랐다. 똥돼지 한쌈에 걸친 조껍데기 술한잔의 달콤 함과 시원함이 아직도 내 목을 타고 흐르는 것 같다.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이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라’ 제주도에 왔는데 말 한번 안타볼 수 있을까! 검은색 모자에 빨간 조끼까지 멋지게 차려 입고 보무도 당당히 말 앞에 섰다. 말의 덩치가 생각보다 커 잠시 멈칫했다. 아니 그보다는 말의 힘겹고 지친 눈동자가 내 발걸음을 붙잡은 듯싶다.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말도 이런 내 맘을 알았는지 제법 힘을 쓰며 한바퀴를 돈다. 다음에는 살좀 빼고 와야겠다. 다이어트 목적 하나가 더 생겼으니 말에게도 고마운 일이다. 벌써 연수일정의 마지막 3일차 밤이 깊어간다. 아쉬움에 일행들과 기울인 소주에 취기가 오른다.

최남단 마라도를 가다!

연수 첫날의 땅끝마을 해남에 이어 오늘은 우리나라의 최남단, 마라도로 향했다. 우리 땅이지만 쉽게 갈 수 없는 곳, 대통령도 취임 전 꼭 한번 들린다는 국토 최남단 마라도…….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마라도행 배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에도 바위 절벽에 일본군이 파놓은 동굴들이 보였다. 외돌개의 올레길 투어와 거문오름을 등반하면서 먼발치에서만 바라보던 동굴을 이번에 는 직접 들어가 볼 기회가 되었다. 깊이 4~5m, 높이 3m정도의 그다지 크지 않은 동굴이었지만 패전을 앞둔 일제의 무자비한 총칼아래 힘겹게 망치를 두드렸을 우리 선조들의 한은 얼마나 가슴 깊이 패였을까…….
30여 분의 뱃길을 달려 도착한 우리를 제일 먼저 반긴 건 바람과 억새였다. 바람 때문에 나무도 잘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엔 70여명이 주민이 꿋꿋하게 지키고 있었다. 2명의 초등생을 위한 가파도 분교, 성당, 교회, 절, 파출소 등 병원만 빼곤 웬만한 시설은 다 갖추어져 있었다. 몇 년 전 “자장면 시키신 분” 이라는 모 CF광고 덕에 중국집도 여러 개가 성업 중이었는데, 맛이나 한번 보자며 세 명이 함께 나눠먹은 자장면 한 그릇은 기대 이상이었다.
일행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곳곳을 배경으로 추억의 한자락을 담았다. 10만평 정도의 작은 섬이라 천천히 걸으며 구석구석을 둘러보아도 1시간여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금도 제주도에서 물을 길어먹을 만큼 척박하고 작은 섬이지만 우리 국토의 최남단에 있다는 상징성 때문인지 풀 한포기, 바람 한줄기조차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제주도로 돌아오는 뱃길에서도 일행은 저마다 멀어져가는 마라도를 향해 아쉬운 눈길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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