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코스는 고구려유적박물관으로 100여 평 정도 되어 보였다. 입구에 서있는 엄청난 크기의 광개토태왕비 탁본외엔 다른 여느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농기구, 의복, 생활도구 등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고구려 고분능으로 주인을 알 수 없는 5개의 능이 있는 곳으로 크기와 모양이 경주 고분의 그것과 비슷하였다. 평상시엔 내부 관람이 불가능하였지만 운좋게도 고분 4호기안을 구경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내부는 냉동고 안에 있는 듯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통로를 따라 10여 미터를 더 들어가자 관이 놓여있던 자리가 보이고 천장의 높이는 보통사람 키의 두배 정도였으며 사방 벽엔 내용을 알아 볼 수 없는 그림들이 새겨져 있었다. 관리를 위한 듯 유리로 벽을 둘러 놓았으나 실효성에 의문이 들 정도로 무덤 관리는 엉망이었다. 천장에서 연신 물이 떨어지고 바닥엔 물이 고여 넘쳐 흐를 정도였다. 무덤 내 유물들은 일제 강점시에 모두 도굴되었고, 특히 어두운 곳에서도 광채를 뿜는 야맹주를 벽화에서 뽑아가 버린 일본의 야만성에 치가 떨렸다. 씁씁한 기분을 뒤로 한 채 드디어 광개토태왕릉에 도착했다. 국사 교과서를 통해서만 보던 광개토태왕비를 마주하며 느꼈던 터질 듯한 흥분은 아직도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보통사람 두배 이상의 엄청난 크기에 고구려인들의 호방한 필체로 새겨진 1700여 자의 비문은 그 누구도 왜곡할 수도 넘볼 수도 없는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 그 자체였다. 비문은 시조인 동명성왕의 건국내용부터 주변국가의 국제정세까지 망라된 대기록으로 당시 고구려인의 기세가 어느 정도였을까를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태왕비에서 태왕릉까지는 걸어서 5분정도로 능 전체가 말뚝으로 둘러져 있고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능은 거대한 돌무지무덤으로 입구는 무덤 위쪽에 위치해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선 내부엔 널따란 두개의 돌이 나란히 놓여져 있고 종전의 무덤과 달리 천장은 그리 높지 않았다. 꼭대기에 서서 태왕인 듯 잠시 눈을 감고 섰다. 이젠 남의 나라가 되어버린 이곳에서 태왕은 눈이라도 편히 감을 수 있을까?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이놈들~'하고 불호령을 치시는 듯하다.

태왕의 불호령을 뒤로 한 채, 우린 장군총으로 잘 알려진 장수왕릉으로 이동했다. 장수왕릉으로의 추측이긴 하지만 여전히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없는 경우에 명명하는 ‘총'으로 불리우는 현실이 안따까울 뿐이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비슷한 형상으로 반듯하게 자른 돌을 쌓아 올리고 천장엔 거대한 돌이 뚜껑처럼 덮여있다. 무덤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방 4면에는 각 3개(한쪽은 2개)씩 15톤의 돌덩어리를 세워놓았다. 무덤의 높이는 아파트 3층 정도, 관람을 위해 설치된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그 위용이 더욱 실감이 났다. 독특한 외양과 달리 무덤 내부는 이전에 보았던 것들과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