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의 바쁜 일정으로 늦은 점심을 하였는데 현지식으로 맛은 꽤 좋았다. 식사를 끝내고 국내성터를 둘러보기로 하였으나,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로 인해 이동하는 차량내에서 주변만 구경하고 곧장 환도산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환도산성은 환인의 오녀산성과 마찬가지로 주변의 지형지물을 최대한 활용하여 능선을 따라 성을 쌓아올린 전시의 외적방어용 산성이다. 16대 고국원왕때 전연의 침입으로 산성이 무너지고 수많은 고구려인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등 대외적으로 어려웠던 시기를 설명하는 가이드의 말에 모두들 할 말을 잊은 채 침묵으로 숙연해졌다. 10여분을 걸어 망루에 올라 주위를 굽어보니 지세나 산세가 강원도의 어느 산골에 와 있는 듯 매우 정겨운 풍경이었다.

고구려문화탐방은 환도산성을 마지막으로 일단락되었다. 장수왕과 함께 압록강을 넘어 고구려의 세번째 도읍지인 평양 천도행으로 이어져야 하건만 이곳에서 막혀버린 아쉬움은 너무 컸다. 평양으로 향하고픈 간절한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우리들의 발걸음은 천길 물속을 걷는 듯 무겁기만 했다. 진정한 고구려유적탐방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38선의 철책이 걷어지길 염원해 본다. 환인에서 시작하여 집안의 만주벌판를 달린 후 압록강을 넘어 평양, 개성, 판문점을 통해 서울로 돌와 오는 진정한 고구려유적탐방을 위해서 말이다. 더불어 우리의 역사를 그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중국 정부가 앞장서 주관하는 현실 속에서 ‘우린 과연 지금 어떠한 모습으로 서 있는가' 다시 한번 돌이켜볼 때가 아닐까?

이제 우리는 집안시를 떠나 민족의 정기가 살아 숨쉬는 백두산을 보기 위해 통화로 이동했다. 통화역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백두산 바로 밑 이도백화까지 가기로 되어 있었다. 통화는 위성도시 집안을 포함하여 인구 백만이 넘는 꽤 큰 도시로 현재 서울의 송파구와 자매결연을 맺고 활발한 문화교류를 진행중인 곳이다. 통화로 가는 길가에도 다른 시골길과 다름없이 옥수수 물결로 넘쳐나고, 고추나 파와 같은 작물은 어디서도 구경하기 힘들었다. 우리 시골에선 제일 좋은 건물이 교회인데 반해 중국에선 학교건물이 가장 크고 깨끗했다. 삼삼오오 모여 도로에 걸터앉은 이들은 대형버스가 경적을 울리며 달려가도 그저 쳐다만 볼 뿐 비킬 생각을 않는다.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허리 휜 노인들만 볼 수 있는 우리 시골과 달리 이곳은 젊은 청년들과 어린 아이들이 꽤 많이 보였다. 시골 읍내엔 파란색 바탕에 빨강이나 검정색글씨의 획일화된 간판들로 채워져 있었다. 생리해결을 위해 잠시 정차한 바로 맞은편의 상점을 구경삼아 들어갔다. 편지지, 볼펜 등 필기구와 아이들 장난감, 라면 등 식음료, 호박과 생강 등 채소로 구색이 다양한 만물상이었다. 우리가 70년대쯤 먹어보았던 아이스께끼도 있어 하나씩 먹어보았는데 사이다에 우유를 섞어 얼린 듯한 맛으로 시원하고 맛도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