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으로는 장백폭포의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왼쪽으론 82℃의 온천수가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경쟁하듯 달려 내려가는 장관이 펼쳐진다. 드디어 64m 높이의 장백에 이르니 그 엄청난 높이와 수량으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천지에서 흘러내린 물은 이곳 장백폭포를 타고 이도백화를 만나 만주의 송화강을 이루게 된다. 여느 산천의 폭포와 다를 바 없는 그저 물이건만 장백에 담근 손안으로 타고 드는 이 느낌은 필경 우리의 민족혼인 천지의 기운이리라! 장백을 왼쪽으로 하고 산허리를 감고 정상을 향해 굽이쳐 오르는 터널은 또 하나의 장관이다.
천상의 호수를 보기위해 줄지어 터널을 오르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우린 짚차를 타고 천지에 오르기 위해 하산을 서둘렀다. 여느 때보다 이른 아침식사로 출출하던 차에 온천수로 삶은 계란은 우리의 허기진 배를 채움은 물론 특별한 재미를 동시에 주었다.

천지를 오르내리기 위해 늘어서 있는 짚차는 백여 대가 넘었으며 차량 한대에 6명이 탑승하도록 되어 있었다. 가이드를 따라 줄을 선지 30여분이 지나 우리 차례가 되었다. 2700m가 넘는 산정상까지 짚차가 오를 수 있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기사는 익숙한 솜씨로 주행을 시작하더니 제한속도 15를 비웃기라도 하듯 웬만한 코너링은 시속 40을 훌쩍 넘겨버리기 일쑤였다. 곡예에 가까운 운전으로 해발 2500m에서 펼쳐지는 푸른 잔디의 고원을 감상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경치를 감상하기엔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지나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너무나 컸다.
30여분을 달려 천지에 이르자 아래쪽의 뙤약볕과 달리 심한 바람과 안개비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고산지역인데다 바람마저 심하게 불어 숨조차 제대로 가누기 힘들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30분 동안 천지는 과연 우리의 시선을 허락할 것인가?
천지여! 당신을 보기 위해 이렇게 달려왔건만 당신의 숨결만 느끼고 돌아설 수만은 없습니다. 당신의 입술이라도 당신의 한쪽 눈이라도 볼 수 있도록 허락되길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어 봅니다.
염원이 통한 것일까?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소리 나는 쪽으로 달려가니 이미 안개속으로 모습을 감춘 뒤였다. 이렇게 숨바꼭질하길 여러 번, 드디어 몇 초 안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은 이들에게 천지는 그의 모습을 드러냈다. 화보집에 실린 것처럼 맑은 날 푸른바다 빛깔의 천지는 아니었지만 운무속에 일렁이던 짙푸른 물결은 애국가 첫 소절을 부를 때의 그 감동 그대로였다. 우리나라의 가장 높은 꼭대기, 민족혼의 한정수리에서 나의 심장이, 우리의 가슴이 뛰고 있다. 한번 허락된 천지는 우리에게 좀 더 오랫동안 이곳저곳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