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중심가에는 분수쇼가 펼쳐지고 네온사인 불빛을 따라 흩어지는 물줄기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함께 흘러내렸다. 다른 중국 도시와 마찬가지로 이곳 시내 사거리의 신호등에도 숫자가 카운트되고 있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의 숫자를 보면서 언제 신호가 바뀔 것인지 예측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이곳 신호등체계의 특징이었다.
서너 번의 신호를 받고 나서 정통 북한음식을 맛볼 수 있는 평양식당에 도착했다. 가슴에 인민기를 달고 우릴 맞는 북한 종업원들의 얼굴엔 무표정만이 가득했다. 우리들에 대한 특별한 경계심은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그저 일상에 젖어버린 식당 종업원의 얼굴뿐이었다. 접촉하기 어려운 님들에 대한 만남에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으나 그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 같다. 그러나 곧이어 차려진 음식들은 우리의 실망감을 놀라움과 만족감으로 바꾸어놓았다. 김치는 며칠전 집에서 보던 색상 그대로였으며, 입안에 한입 가득 배어나오는 시원 매콤함은 어머니가 차려주신 바로 그 맛이었다. 부침개, 생선, 회 등등. 순식간에 그릇들이 비워졌다. 입가심으로 나온 평양냉면은 목이 따끔거릴 정도로 매운 맛으로 우리네 비빔냉면에 물을 부어 먹는 기분이었다.

오늘 저녁 심양으로 이동해야 하는 촉박한 일정으로 우린 서둘러 식당을 빠져나와 연길공항에 도착했다. 당초 9시 비행기였으나 또다시 연착되어 10시가 조금 넘어 이륙할 수 있었다. 50분을 비행하여 심양 숙소에 도착하니 시계는 벌써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도착과 함께 내일 일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각자의 방으로 헤어졌다.
젖혀진 호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시내의 화려한 불빛과 고층 빌딩들은 그간 시골을 돌며 느꼈던 중국의 이미지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5일차 - 8월 4일(금) : 심양
심양은 중국의 5대 도시로서 동북지방의 최대 중심도시이며 청나라의 첫 번째 수도였기도 하다.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조금 늦은 시간인 7시에 모닝콜이 울렸다.
오전에 심양 고궁과 북릉공원, 오후에 본계수동 동굴 관람이 계획되어 있었다. 심양 시내에 위치한 고궁은 창경궁 정도의 크기로 보여 지고 우리 고궁들과 달리 수목이나 연못 등 특별한 조경시설이 없어 무미건조한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건국초기로 왕권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던 탓인지 궁궐의 위용도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사람 키의 대여섯 배는 됨직한 높이로 쌓아올린 담이 특색이었다.
30여분의 관람을 끝내고 곧장 궁궐의 주인이었던 청나라 2대 왕 태종의 능(북릉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늠름한 우리 영사관을 지나쳐 북릉공원에 버스를 내리니 후끈한 한여름의 열기가 우릴 먼저 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