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 말부터 우리가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한 변화가 우리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보화ㆍ개방화 사회로 들어서면서 개인간 국가간의 경쟁이 격화되고, 경쟁력의 원천이 노동, 자본, 기술로부터 지식으로 바뀌었으며, 인터넷망은 지구를 감싸는 전자표피층을 형성하고 있다.

요즘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칫 잃어버리기 쉬운 행복과 건강에 대한 각성이 우리의 생활 속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주 5일 근무제는 자신을 계발하고 심신의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는 보다 적극적인 쉼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웰빙(Well being)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크게 클로즈업되고 있다.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내면에 대한 통찰과 삶의 여유를 잃어버리기 쉬운 현대인의 생활 속에 Well being 문화가 마치 유행처럼 우리사회에 번지고 있는 것은 필연적이면서도 다행스런 일이다.

“웰빙”은 말 그대로 건강한(Well, 안락한·만족한) 인생(being)을 살자는 의미로, 원래 미국에서 반전운동과 민권운동 정신을 계승한 중산층 이상 시민들이 고도화된 첨단문명에 대항해 자연주의, 뉴에이지 문화 등을 받아들이면서 파생된 삶의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국내에 웰빙 개념이 소개된 것은 2002년 외국 라이센스 계열 여성 잡지들이 이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면서 부터이다.

은 의ㆍ식ㆍ주의 모든 생활에 다양하게 반영될 수 있으며, 60ㆍ70년대 요가나 명상을 크게 유행시킨 미국의 히피족, 80년대 여피(yuppie)족과 90년대 보보스족의 라이프스타일도 주요한 요소를 이루고 있다. 이들의 공통적인 측면은 물질적 가치에만 매달리던 이전 세대와는 달리 개인주의적인 가치관을 바탕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한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사회에는 웰빙이 요가나 스파, 피트니스 클럽을 즐기며 비싼 유기농식 재료를 사용한 음식만을 선호하는 등 물질적 풍요를 향유하고 건강과 미용에 집착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왜곡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과도한 다이어트로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있는가 하면, 고가의 웰빙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진정한 웰빙족인 듯 겉멋만을 추구하는 소비지향의 현대인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인간다움과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웰빙이 자칫 ‘human wellbeing'이 아닌 ‘capital wellbeing'의 사회로 이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진정한 웰빙이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한 템포 여유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태어날 때부터 몸집과 비례한 에너지 저장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이‘생명의 연탄'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체 여건에 맞도록 타는 속도를 적절히 조정하는 “게으름의 지혜”가 필요하다. 쥐의 수명이 4년, 거북 수명이 250년이라는 사실이 반증하듯 안팎으로 느긋하고 균형 잡힌 삶을 사는 것이 제 명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좋은 음식, 좋은 환경도 중요하겠지만 게으름도 피워볼 만한 게 아닐까?
간을 위해 과도한 알코올과 지방을 섭취하는데 게을리 하고, 책을 가까이 함으로써 영혼이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에 게을리 하며, 오른쪽 뇌에서 담당하는 취미생활을 통하여 이성을 담당하는 왼쪽 뇌의 사용을 게을리 해보자.

저지방 유기농 식품 섭취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다른 사람과의 거리를 조절할 줄 아는 사람, 독서와 명상을 즐기고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많은 일을 해 내지만 일의 부담을 취미생활과 휴식으로 조절하는 한마디로 균형 잡힌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 그들의 삶이 진정한 웰빙이 아니겠는가?

웰빙은 “무엇을 입고, 먹고, 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존재(Being)의 안녕이자 완성이다.

우리 모두 어려운 현실과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변화를 적극 수용하고 건강한 병역문화를 꽃피운 주인공으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다면 정신적 웰빙은 성취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주말에는 직원들과 가까운 산에라도 올라 목이 터져라 “야호” 한번 외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