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유난히도 뜨겁던 여름 어느 날, 경남병무지청 신체검사장에는 징병검사대상자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한다. 부모님과 동행을 한 사람도 몇몇 눈에 띈다. 건강하고 당당한 대한민국의 사나이로 성장해 나라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 대견하고 자랑스런 일이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들을 머지않아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 한구석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공통된 심정이리라.
오늘은 자랑스런 대한의 아들로서 국방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정 받는 날이다. 평소 병역의무는 특별한 자격이 없어도 대한민국의 남자이기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을 했는데, 이곳에 와보니 “병역의무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걸맞은 자격과 요건을 갖춘 사람만이 이행할 수 있는 권리”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파란색 상ㆍ하의를 입은 우리의 아들들은 한쪽 귀에 귀걸이를 달고, 혹은 번개 맞은 것처럼 머리카락을 세우고, 혹은 갖가지 색깔의 헤어스타일로 자신만의 개성을 한껏 뽐내고 있다.
저렇게 자유로운 개인생활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입대 후 절제와 협동을 중요시하는 단체생활을 어떻게 감내해 내고 고된 훈련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 걱정은 기성세대의 편견일 뿐 저들은 또 다른 모습으로 자기 앞에 주어진 임무를 훌륭하게 소화해낼 것이다.
모든 검사를 끝내고 검사결과를 종합해 컴퓨터를 통해 들려주는 신체검사 판정장면은 인상적이었다. 특히 자신의 검사결과를 받아들이는 표정도 다양해 생각과 다른 판정결과에 씁쓰레 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당당하고 밝은 모습으로 현역판정 결과를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어 징병검사장은 희비가 뒤섞인 또 하나의 삶의 현장같기도 했다.
드디어 나에게 주어진 임무가 시작되었는데, 나의 임무는 신체검사대상자에 대한 면제 판정의 심의와 신체검사 결과에 불복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과의 상담을 통해 재 신검 여부를 결정하고, 때로는 의무자와 병무직원의 중간에서 조율자와 병무행정발전을 위한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명예옴브즈만 제도」는 올해 처음 병무청에서 도입한 제도로, 징병검사 전 과정에 대한 국민의 불평이나 불만사항을 수렴, 병무청으로 하여금 시정하도록 건의하고 조언해줌으로써 행정의 투명성과 정확성을 높여가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따라서 명예옴부즈만으로 선발된 사람들은 아들을 군에 보내는 부모의 입장이 되어 징병검사 과정에 참관하여 불편과 불만이 없는 지 살피고, 징병검사의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하게된다.
20여 년을 간호사로만 일해 온 나에게 징병검사 참관은 경직된 분위기로만 알고 있던 기존의 병무청에 대한 이미지를 일순간에 깨는 작은 사건이었고,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시간들이었다. 특히 징병검사의 모든 과정이 전산시스템으로 처리되어 한결 달라진 병무행정의 신속성과 정확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50년 6월 생이라 태어난 후 보름만에 전쟁이 터졌다고 들었다. 기억은 없지만 전쟁통에 날씨는 덥고 바쁘게 피난을 다녔는데 반공호 굴 안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울어 돼 부모님의 고통과 어려움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들으면서 자랐다. 그 때문인지 국군과 군인에게 느끼는 고마움과 소중함은 남다르다.
부디 대한민국의 모든 아들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군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가정과 지역 사회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훌륭한 일꾼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