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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가을입니다. 청와대 주변에도 낙엽이 수북이 쌓였습니다. 가을 낙엽은 보기에는 멋지지만 장병들에게는 떨어지는 즉시 치워야 할 ‘애물단지'입니다. 낙엽과 한바탕 씨름을 하고 나면 곧 눈과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제가 근무하던 부대도 눈이 참 많이 내리는 곳이었습니다. 눈을 보기 힘들었던 김해와 부산에서만 살다가 입대한 저는 하얗고 소담스럽게 내리는 눈이 마냥 신기하고 좋아 보였습니다. 부대에 첫 눈이 내렸을 때 무심코 “와, 눈 한번 멋지게 내린다”고 말했다가 선임병에게 눈물이 찔끔 나도록 혼쭐났습니다. 눈을 치우는 일이 그렇게 고달픈 일인 줄 눈이 온 다음에야 알게 됐습니다. 지금도 그때 눈 치우던 생각을 하면 정신이 다 아찔해집니다.
저는 병사 출신입니다. 일반 병사 출신이 대통령이 된 것은 제가 처음입니다. 1968년 3월에 군번 ‘51053545'를 받고 입대해 71년에 상병으로 만기 전역했습니다. 지금도 병장을 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당시에 베트남 참전 장병들이 많아 병장 정원이 크게 줄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원주 1군사령부 부관부에서 군생활을 시작했는데 신병 시절을 힘겹게 했던 것은 시도 때도 없는 ‘사역집합'이었습니다. 사역이라는 것이 일과가 없는 시간에 집중되다 보니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의 휴식을 고스란히 빼앗기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래도 군기가 바짝 든 신병이었기에 ‘사역병 집합' 구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제일 먼저 뛰어나갔습니다. 당시 제일 편한 사역은 연병장에서 클로버를 뽑는 것이었습니다. 잔디밭에 앉아 클로버를 뽑는 일은 단순하고 쉽기도 했지만 슬금슬금 요령을 피울 수도 있는 꽤 괜찮은 사역이었습니다.
군생활을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유난히 센 군기와 잦은 기합이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부관부가 당시에는 담뱃값 정도 챙길 수 있는 자리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1년을 그렇게 지내다가 전방 차출이 있다는 소식에 즉각 지원했고, 곧 12사단으로 옮겨 갔습니다. 지원할 때에는 호기롭게 했습니다만 막상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사방이 가파른 산으로 둘러싸여 하늘이 손바닥만하게 보이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하던 그 원통이었습니다.
군사령부 부관부에서 고생한 탓에 이번에는 일반 보병중대로 배속되기를 바라며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대대 CP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휴가 가는 선배들이 ‘중대에서는 근무 중에 졸면 목을 베어간다'고 어찌나 겁을 주던지 결국 저는 대대장 당번병으로 주저앉게 됐습니다. 그리고 건봉산 대대 상황실에서 몇 달 동안 생활했습니다.
비록 철책 근무를 서는 보직은 아니었지만 휴일도 없이 밤을 꼬박 새우고 낮에는 새우잠을 자야 하는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더 힘들었던 것은 매일 물을 길어 올리는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전방 철책중대로 가서 중대 본부에서 근무하다가 마침내 소대에까지 내려가 철책근무하고 GP근무도 하다가 전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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