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선수 및 연예인들의 병력비리가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거를 포함해 스포츠 스타들과 연예인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어 팬들이 많은 충격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의 병역기피 방법은 일반인들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그 여파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이 군대를 간다는 것은 자신의 상품가치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라 그들의 행위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운동선수나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도 이런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더욱 더 철저히 수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전 이번 사건을 또 다른 차원에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제 동생은 이번 병역비리와 전혀 반대의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3년 전(2001년) 봄이었습니다. 군대에서 말년 생활을 보내고 있던 동생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제대를 3개월쯤 남겨둔 시점이었습니다.

“형, 나 다리를 약간 다쳤어.”
“(목소리를 높이며) 어디를 다쳤는데?”
“무릎이 약간 나간 것 같은데... 군 병원에 입원해 있어.”
“어. 군대있으면 그런 일 자주 있으니까 조심해”

무릎이란 말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은 채 병원을 가보기로 했습니다. 동생은 유격훈련을 받는 중에 무릎에 통증을 호소해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병원을 가본 결과 생각보다는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동생의 병명은 <십자인대 완파 및 반월상연골 파열>.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병명이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어머니에게 상태가 심각하다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상태로는 군 생활을 계속 할 수 없으니 의가사 제대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제대를 3개월 나둔 채 제대를 하라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얘기였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동생은 아연실색하며 엄마에게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전 절대로 중간에서 제대할 수 없어요. 엄마”
“빨리 일반 병원에서 수술해야 한 대. 규정이 그렇다니 어쩌겠어.”
“안돼. 대학도 못간 내가 군대라도 제대해야지 사회에 취직이라도 할 수 있을 거 아냐.”
동생은 끝까지 제대를 못하겠다고 버텼습니다. 다리를 절어서라도 군 생활을 하겠다는 동생의 결심은 너무나 확고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동생의 다리 상태는 군대 내 병원에서 도저히 치료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저희 가족들은 동생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원진아 그냥 제대하자. 군대를 제대했다는 것 보다 몸이 우선이다.”
“안돼. 나도 남들처럼 떳떳하게 만기제대하고 싶어.”

그런 실랑이가 오가면서 결국 동생은 제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동생은 병원에서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보내다 만기 제대 두달을 앞두고 군대를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날 동생의 눈빛을 잊을 수 없습니다. 동생은 슬픈 눈빛으로 집안에 누워 있었습니다. 동생은 부대에 있었던 소대장들과 동료들에게 전화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 후 동생은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다시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의가사 제대의 충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가끔 밥을 먹다가도 동생은 나에게 한마디씩 던졌습니다.
“형 난 평생에 제대로 한 게 없어. 그래서 군대라도 똑바로 제대하고 싶었는데...”
‘원진아 넌 최선을 다했다. 이제라도 열심히 살면 되지 힘내라.”
그렇게 동생은 점차 군 생활에 대한 악몽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매년 고위층 자제, 스포츠선수, 연예계 등을 중심으로 병역비리 사건이 터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이 사회에서 직·간접적으로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기와 돈을 통해 그들은 사회적 기득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적 의무를 다하기는 거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제 동생은 사회적 의무를 다하지 않아 지금까지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이 양 극단적인 사례가 우리사회의 모순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오늘따라 병역비리 사건을 보면서 제 동생이 더욱 더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