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눈에 띄는 것은 피난민 행렬의 재현이었다. 두꺼운 옷으로 몸을 둘둘 말고,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고 전쟁을 피해, 살아남기 위한 여정을 떠난 피난민들은 전쟁에 휩쓸려 도중에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학교도 같이 피난을 갔다는 점이다. 피난 중에도 천막을 치고 교실을 만들어 선생은 가르치고 학생은 공부했다. ‘ 과연 선비의 나라답구나’ 하면서도 현재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높은 교육열이 괜히 비롯된 것이 아니구나 싶기도 하였다.
민간인들의 희생은 피난길에서만이 아니었다. 북한군은 남한의 점령 지역에서 반공인사들을 찾아내어 인민재판으로 처형, 강제징용하여 전선에 투입시키기 위해 수색을 하였다. 따라서 피난을 떠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천정, 마루 밑, 동굴이나 산 속에서 숨어 살 수밖에 없었는데, 북한군 수색대는 강제징용을 위해 집집마다 들쑤시고 다녔을 것이다. 집안에 숨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북한군에게 맞서는 노모의 모형을 보고 있자니 저런 경우 어머니와 아들이 다 희생되었을거란 생각이 들어 그 상황을 상상하고 싶지가 않았다.

마지막으로 피난민 생활이라는 전시물을 보게 되었다. 전쟁으로 생활의 터전이 모두 파괴되어 버린 황폐한 땅에서 우리 국민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을까. 거적으로 지은 집들과 위생을 위해 이발을 하는 모형들과 어린 아이의 우는 소리(효과음)가 기억이 난다. 내가 가장 감정 이입할 수 있었던 건 아들의 전사 통지를 받고 우는 아낙의 모습이었다. 엄청난 사상자를 냈던 한국전쟁이었기에 당시로써는 아마 흔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그 흔한 전사자들은 다들 어느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스러운 아들이었을 것이며 그들이야말로 시대의 비극에 휩쓸려 나라를 위해 젊음을 바친 가엾고도 위대한 영혼들이다. 덧붙여 내 아이들, 우리들의 후손들에게는 이러한 비극을 물려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는 반세기 가량 휴전 중인 나라이며 세계에 거의 없는 단일민족이지만 두 동강 나 있는 비극에 처해 있다.
나라의 사정이 이렇기에 예전에는 반공 교육이 철저하였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전쟁기념관이 아이들이나 학생들, 또 나 같은 젊은이들에게 한국전쟁에 대한 지식을 쌓고 생각도 해보는 계기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에서 가장 참혹하며 비인간적이고 슬픈 것이 바로 전쟁이 아닐까? 그 전쟁이 이 땅에 다시 일어나서, 북한의 남침이 가져온 민족 최대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고, 나아가 민족의 진정한 화합을 이루어 내는 것이 우리 국민들이 두고두고 풀어내야 할 숙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조국의 평화를 위해 젊음을 불사른 슬픈 망자들을 추모하며 휴전이 아닌, 종전의 시대가 어서 빨리 다가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