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곳곳마다 봄꽃향기가 아름답게 피어나는 4월의 오후, 방금 점심을 맛있게 먹은 나는 앉은 자리에서 오전에 방문한 기관의 복무감독 사항을 대충 정리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른한 몸을 차에 싣고 공익근무요원이 복무하고 있는 경북 성주의 한적하고 아담한 복지시설인 성베드로의 집을 방문하였다.

사회복무감독관은 공익근무요원이 성실하게 복무하는지 여부를 감독하는 것이 주임무 이지만 요사이는 공익근무요원의 고충을 상담하여 무사히 복무를 마치도록 돕는 일도 중요한 임무가 되고 있다. 공익근무요원 역시 사회복무감독관이 방문하면 복무점검에 대비하기보다는 고충사항이나 애로사항을 해결하여 주는 사람 정도로 생각한다. 이는 여러 측면이 있겠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다섯명의 공익근무요원은 두 번째 만남이어서 인지는 모르지만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처음 단체대화 시간에는 모두가 한 가지라도 더 고충사항이나 건의사항을 토로하고 있는데 유난히 한 공익요원은 불평도 웃음도 없이 힘없이 듣고만 있었다. 이런 경우 직감적으로 특별복무관리 대상이라고 판단한다. 역시 개별면담을 하여 보니 황도현 공익은 생활이 매우 어려웠다. 아주 어릴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연이어 어머님마저 집을 떠나 할머니와 지금껏 생활해오고 있었다. 상담결과 생계곤란사유 면제 대상이라 즉시 신청하도록 안내 한 후, 엄마 없이 자란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어머니에 대하여 조용히 질문하였다.

“어머님 보고 싶죠? 어머님에 대한 기억이 있어요?” 라고. “어렴풋이 기억이 날듯말듯 해요. 소풍이나 운동회 할 때 많이 울곤 했죠. 사진이라도 한번 보고 싶습니다.” 라고 하였다. 나는 용기를 내어 “어머님을 만나게 해 드릴까요?” 라고 물어 보았다. 공익요원은 조금은 놀란듯이 바라보면서 “어디 사시는지 알고 계십니까? 만나게 해주셔요.” 라고 하여 나는 조금 당황을 하면서 “아니요, 알지는 못하지만 제가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라고 답변하였다. 수일 후, 가져온 생계감면 서류를 사전 검토하면서 어머님의 흔적을 찾아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는 어렵게 어머님의 연락처를 알아내어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하기전 ‘혹시라도 잘 살고 계시는 분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까? 더더욱 다른 가족 분이 받으면 큰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몹시 걱정은 되었지만 가엾은 공익요원을 생각하여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김명자씨 되십니까?”, “그런데 누구시죠?”, “예, 저는 대구병무청에 근무하는 이한명이라고 합니다. 지금 전화통화가 가능하십니까?”, “예, 병무청에서 무슨일이죠?”, “이런말씀 여쭈어도 될 지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성주에 살고있는 황도현 군 아십니까? 황도현 군은 현재 공익근무를 하고 있으며 저는 황도현 군을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입니다. 황도현 군이 어머님이 보고 싶다고 하여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합니다.” 순간 아주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후, “그런데 지금와서 그 이야기를 왜 하십니까? 병무청이라고요? 공무원이 이런일도 합니까? 전화 하시는 분이 어디 근무하고 이름이 뭐라고요?” 답변을 듣자 마자 전화를 끊었다. 나는 잠시나마 많은 후회를 하였다. 괜히 이런 일을 시작하여….

며칠 후 아주머니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요사이 하도 사기꾼이 많아서 혹시나 해서 확인하고 전화 합니다.” 다행인지는 모르지만 어머님은 아직도 혼자 살고 계셨다. 나도 ‘휴’ 안도를 하였다. 어머님은 고맙다고 하면서 진짜로 도현이가 나를 찾느냐고 두번 세번 물었다. 그리고는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즉시 황도현 공익에게 어머님 소식을 전하였다. 황도현 공익도 정말로 엄마가 자기를 찾느냐고 재차 묻곤 하였다. 나는 서로 연락처를 가르쳐 주어도 좋다는 의사를 확인 후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이후 몇 번이고 서로가 정말로 자기를 찾는게 맞느냐고 확인을 하면서 도저히 떨려서 며칠째 잠도 못자고 먼저 전화를 못하겠다고 하였다. 그러고는 수일이 지난 밤 열시쯤 황도현 공익이 울면서 나에게 전화가 왔다. “방금 어머님과 막 통화를 마치고 고마워서 바로 전화를 드립니다” 라고 하였다. 순간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다음날 어머님도 고맙다는 전화가 왔다. 이후 모자지간에 그렇게도 그리던 상봉도 이루어 지고 얼마전 황도현 공익은 생계곤란사유로 면제처분을 받았다. 현재 황도현 공익은 어머님이 살고 계시는 경북 포항에서 직장을 구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도 나는 그때 어머님과 통화할 때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루도 자식을 잊어 본적은 없지만 이 못난것도 엄마라고 찾는다.’ 라고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흐느껴 울먹이는 어머님의 모습이 나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역시 부모와 자식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