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늦잠의 행복에 흠뻑 빠져있는 내 귓가에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깨고 싶지 않은 마음을 쫓으며 겨우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누나야, 나야. 자고 있었어? 시간이 몇 신데, 난 6시에 일어났는데~ 잘 지내지」
이런저런 안부인사가 오가던 중「누나야, 나 통장으로 돈 좀 넣어줘. 집에 갈 차비가 없어.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말하면 나 혼나.」
곧 휴가를 나온다는 군대간 막내 동생. 군대가서 철 좀 든 줄 알았는데 처음에만 그랬지 여전히 내게는 어린 막내일 뿐이다. 낼 모레 휴가 나온다면서 차비도 챙겨놓지 않았다니 쯧~그래도 어쩌랴 집에 올 차비가 없다는데, 「계좌번호 불러라.」
작년 이맘 때 쯤, 적어도 방학은 놀고 군대가고 싶다면서 입영날짜를 미룰 수 없냐며 심난해 하던 동생모습이 떠오른다. 모병업무를 담당하면서 군대가려하는데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며 찾아오는 병역의무자들을 매일 만나고, 전화상담을 하는 나였기에 군대가는 일은 그저 당연한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내 동생의 입영날짜가 잡히고, 입대 날짜가 다가올수록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자니 얼마나 짠하던지. 저렇게 제멋대로 하고 살던 동생이 군대가서 적응은 잘 할런지, 몸도 약한데 고된 훈련은 잘 견뎌낼지,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기는 할지, 모든 게 걱정이었다.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오고, 목숨 걸던 머리스타일을 짧게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저녁식사를 함께하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우리가족은 입영부대 안에서 동생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었다. 군복으로 갈아입고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던 그때, 걱정하지 말라며 이제껏 의젓하게 굴던 동생의 눈에 얼핏 눈물이 스쳐지나갔다. 군복이 몸에 맞기는 한건지, 군화가 크지는 않은지 연신 걱정에 눈물이 그렁한 엄마와 애써 담담한척 서 계시는 아빠와 잘하고 오라며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며 사진을 찍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한동안 엄마는 그때 찍은 사진을 매일같이 들여다보았고, 동생의 편지를 기다렸으며, 나는 신병교육생들의 사진이 올라오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여 행여 동생의 사진이 있진 않을까하며 그 많은 사진들을 일일이 다 클릭 해보았다. 동생과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하는 장병들과 집에서 준비해간 음식을 나눠먹었던 첫 면회 때, 집에 있을 땐 너무 말라서 걱정했던 동생이 살이 오른 듬직한 모습으로 첫 휴가를 나왔던 때를 기억한다. 그렇게 애틋했던 시간들이 이제는 그런 때가 있었나 싶게 덤덤하게 느껴진다. 시간은 항상 그대로 일 것만 같던 상황을 나도 모르는 새 조금씩 변화시키고 익숙하게 만들어 버린다. 내가 느끼던 느끼지 못하던 그대로 멈춰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처음에는 동생이 없어 낯설던 집도, 휴가를 나온다는 동생의 전화도, 이제는 군생활에 잘 적응한 동생 덕분인지 모든 게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기분이다.

여자이기 때문에 애초에 군대에서의 추억이란 것은 내겐 없다. 하지만 병무청이라는 곳에서 일하는 직업의 특성상 하루에도 수십 번 군대를 가고자 하는 의무자들을 만나고, 가끔 인도인접을 나갈 때 아들을 군대에 남겨놓고 나오며 눈물짓는 부모님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밀려드는 전화에, 민원인에 짜증이 날 때마다 가끔 내 동생을 생각한다. 모든게 처음이라서 막막했던 그때 그 누구도 아닌 내 동생이기에 더 크게 다가왔던 군대문제, 조금 더 민원인의 입장에서 내 가족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성심성의껏 업무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처음엔 걱정이 많았지만 이제는「누나야, 나 9개월 남았어.」라고 말하며, 군대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동생이 고맙고 대견하다. 남은 기간동안 건강하고 알차게 군 생활 잘 마치고 어서 빨리 집에서 얼굴 볼수있는날이오기를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