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멍이 났나, 하루 종일 밖에서 들리는 소리라곤 비 내리는 소리뿐이다. ‘ 주륵…주륵…쾅쾅!!…. 주르르르르륵….’
가만히 앉아 비 소리에 집중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하지만 요즘은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역시 과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한 것이 틀림없다. 내게 허락된 이 자유로운 시간이 무료하게만 느껴지는 순간, 문득 언니가 짐 정리를 하면서 읽어보라고 저 멀리 서울에서 택배로 보내준 짐꾸러미가 떠올랐다. 어디에 두었더라? 한참을 이방 저방 찾아다닌 끝에 찾아낸 박스상자. 얼마나 단단하게 포장을 했는지 맨손으로는 열리지가 않을 정도다. 개봉 박두!!

열자마자 내 눈에 띄인 책은 기독교관련서적(언니는 신학대학원생)….
바로 패스하고 또, 또, 패스를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상자 속 책들. 언니가 원망스러운 찰나, 발견한 책 한권!
‘…소통???’
비 소리에 장단 맞춰 술술 읽어 내려가기를 1시간. 오, 괜찮은데?

일단 저자는 어린시절 즐겨 읽었던 ‘브레멘 음악대’ 라는 그림형제의 유명한 동화에서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사람이 아닌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는 네 마리의 동물들(당나귀 퍼니, 개 로티, 수탉 보이스, 고양이 익스퍼)이다. 이 책의 줄거리를 각 동물들과 연계해서 요약을 해보면 간단하다.

정(情)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퍼니(당나귀)는 엔트니 농장의 지나친 서열위주의 삭막하고 건조한 분위기에는 좀처럼 적응을 하지 못했다. 결국 퍼니는 엔트니 농장에서 탈출을 감행, 그의 부모님이 행복한 삶을 지내고 있다는 소문(?)만으로 브레멘으로 향했다.
주인에게 사랑과 인정받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로티(개)는 끊임없이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주인은 그를 귀찮아하며 심지어 미친개 취급을 한다. 이에 실망하고 좌절한 로티는 결국 가출을 하게 되고 우연히 퍼니를 만나 그의 권유로 함께 브레멘으로 향한다.
맑고 깨끗한 목소리와 일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을 가진 보이스(닭)는 항상 보람과 열정을 갖고 임했던 ‘새벽녘외침’ 과 주인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해냈던 ‘암탉 지키기’ 사이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새벽녘 외침을 하는 도중 퍼니와 로티를 만나 그들에게 고민을 털어 놓으며 위로를 받고 그들과 함께 브레멘으로 향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고양이가 되고 싶은 익스퍼(고양이)는 끊임없이 자신의 기록갱신을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주인은 그런 익스퍼가 못마땅해 철저히 애완용 고양이로 집에 가두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익스퍼도 본인의 목표를 잊고 현실에 안주하지만 주인은 결국 익스퍼를 쥐도 못 잡는 한심하고 쓸데없는 고양이로 취급하고 집에서 내쫓아버린다. 익스퍼는 쓸쓸히 방황하다가 우연히 퍼니의 무리를 만나게 되고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주며 위로해주는 그들을 따라 브레멘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