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금년 연세가….”
“일흔 다섯 이라우.”
“그 연세에 어찌 그리 산을 잘 타십니까. 언제부터 타셨는지….”
“마흔 살 때였지 아마.”
“늦은 나이에 산을 타셨군요. 무슨 계기가 있었는지….”
“나도 본시 산을 안 좋아 했어. 다시 내려올 걸 뭐 하러 올라 가냐 그랬지. 그런데 그 해 여름, 친구가 산악회를 따라 설악산을 가자고 하더군. 안 간다고 했는데 친구 녀석이 어찌나 꼬드기는지…. 소원 들어준다 하고 갔지. 새벽에 도착해서 하루 종일 산을 탔어. 그때 죽는 줄 알았어.”
“무척 힘드셨겠군요.”
“며칠간을 끙끙 앓아 누웠지. 온 몸이 쑤시고 장난이 아니더라고. 생각해봐. 한번도 산에 안 간 놈이 험한 산을 하루 종일 탔으니 오죽했겠어.”
“그래서 한 참 동안은 산을 안 타셨겠네요.”
“그런데 말이야. 몸이 괜찮아지니까 이상한 오기가 생기더라고.”
“오기요?”
“그래. 남들 다 하는 것을 내가 왜 못하느냐 싶고, 분명 고통스러운 기억밖에 없는데도 이상하게 쾌감, 뿌듯함이 느껴지더라고. 더 중요한 것은 자꾸 산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아. 그래서 한 달 후에 또 갔지.”
“그래요?”
“그때는 말이야. 한 번 갔던 길이고 각오도 돼 있으니까 걸을 만 하더군. 그러다보니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풍경도 들어오는 거야. 풍경이 참 좋았어. 그날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친구하고 소주 많이 마셨네. 지금도 기억이 새롭군. 그때부터 주말만 되면 무조건 산에 올랐지. 어떤 땐 주중에도 휴가 내고 갔어.”
“와! 대단하시군요. 그렇게 단시간에 산과 친해지기가 쉽지 않은데.”
“나무냄새, 풀냄새, 꽃냄새가 좋았고 파란 하늘이 좋았어. 어머니 품에 안기는 것 같았지.”
“우리나라 산은 웬만큼 타셨겠네요.”
“그렇지.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안가본 산이 없어”
“그 중 어떤 산이 제일 맘에 드시던가요.”
“역시 설악산과 지리산이야. 설악산에선 장엄함을, 지리산에서는 푸근함을 느낄 수 있지.”
“오늘 혼자 오셨네요. 친구 분들이랑 같이 오시지.”
“친구? 나처럼 이렇게 높은 산 오르는 친구들은 없어. 반절은 벌써 세상 떠났고…. 남아있는 친구들도 별로 건강이 안 좋아. 고혈압에 당뇨에 관절염에. 다들 골골거리지….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들의 병든 눈동자를 바라보면 내 마음이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