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은 어찌 혼자 오셨네요.”
“혼자 다닙니다.”
“남편이랑 같이 다니시지….”
“지금 남편 만나러 가는 중이예요.”
“예? 먼저 올라가셨나요?”
“산에 묻었지요.”
“예? 산에요?”
“오래 전 에베레스트 등정하다가 사고로 먼저 갔어요.”
“이런….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없어요. 그게 우리들 팔자인걸요.”
“힘드셨겠네요.”
“그래요. 힘들었죠. 그러나 그 사람은 행복했을 거예요. 자기가 좋아하는 산을 타다가 죽었고 좋아하는 산에 묻혔으니까요.”
“어쩌다가 그렇게 됐습니까.”
“그 사람, 산에 대한 욕심이 참 많았어요. 삶의 목표가 산에 맞춰져 있었어요. 전문 산악인도 아니었는데 해외 한 번 다녀오더니 사람이 완전히 변하더군요. 그 등반은 저도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이번엔 좀 안 갔으면 좋겠다 싶었죠.
그러나 일년 전부터 추진해 왔으니 취소하는 것이 쉽나요. 결국 보냈죠. 사고 경위를 들어보니 그 사람은 살 수 있었데요. 일행 중에 해외 등반이 처음인 사람이 발을 헛디뎌 추락하자 그 사람을 구해주다가 변을 당했데요.”
“그랬군요. 안타깝네요.”
“어쩔 수 없지요. 이제는 담담해요. 그 사람 운명인걸요.”
“산이 미웁지 않으세요?”
“당연히 미웠지요. 산이라면 몸서리 쳐졌지요. 산이 원망스러웠어요. 그러나 문제는 산이 아니잖아요. 산이 그 사람을 데려간 것이 아니잖아요. 산은 말없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찾아가 그 품에 안긴 것이지요.”
“산에 자주 오십니까.”
“그 사람 생각이 간절할 때 산에 올라요. 우린 대학교 산악 동아리에서 만났거든요. 그 사람은 산같이 크고 넓고 깊었어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죠. 결혼해서 우린 참 행복했어요. 자상한 아빠요, 가정적인 남편이었거든요. 주말엔 온 가족이 소풍 나오듯 산에 올랐지요. 아이들이 아빠를 무척 그리워해요. 가끔씩 그 사람이 보고플 땐 산에 온 답니다. 산에 오르면 내가 남편을 어루만지는 것 같고 남편이 나를 안아 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핏줄은 못 속이는 가 봐요. 글쎄 아들 녀석이 대학 산악 동아리 회장을 맡았지 뭐예요. 아빠가 못다 이룬 꿈을 이룬다나 어쩐다나. 아휴. 나도 모르겠어요. 애 아빠가 돌봐 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