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어디 다치셨습니까?”
“다친 것은 아닌데 발목이 시큰거리고 아파요.”
“저런 어떡하나. 먼저 물 한 잔 드세요.”
“고맙습니다.”
“배낭을 내게 주세요. 내가 메고 가리다.”
“죄송해서 어떡해요.”
“괜찮아요. 배낭이 그리 무겁지 않은 것 같네요.”
“아저씬 혼자 오셨어요?”
“그래요. 아가씨도 혼자 오셨나요?”
“예. 남친이랑 같이 오기로 했는데 급한 일이 있어서 오늘 회사에 출 근했어요.”
“저런 어떡하나. 그런데도 혼자 오셨네요.”
“예. 저도 이제 산과 친해지려고요.”
“산에 잘 안 다니시는가 보죠.”
“예. 잘 안 다녔어요. 그런데 이제 열심히 다녀야 해요.”
“왜, 그럴만한 사연이라도 있습니까?”
“내가 남친을 엄청 좋아하는데 남친은 나보다 산을 더 좋아해요. 주중에는 시간이 없어서 그 사람 따라 산에 가지 않으면 만날 시간도 없어요. 그리고 내가 산에 따라가면 많이 이뻐해 주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다닌답니다.”
“힘들지 않아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산에 잘 안 다니는데.”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산에 가지 말자고 그 사람을 꼬드겼는데 그 사람은 요지부동인거예요. 그래서 내가 포기했죠. 그런데 다녀보니 괜찮더라구요. 예전엔 조금만 힘든 일을 하면 쉽게 앓아 누웠는데 요즘엔 안그래요. 살도 많이 빠져서 친구들이 이뻐지고 늘씬해 졌다고 부러워해요.”
“제가 봐도 늘씬하고 이쁘시네요.”
“그래요? 감사합니다.”
“남친도 괜찮은 사람 같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그래요. 그 사람. 참 멋있어요. 정신도 건강하고 몸도 참 튼튼해요.”
“좋은 분 만나셨으니 결혼하셔야지요?”
“나는 빨리 하고 싶은데 그 사람이 프러포즈를 안해요.”
“저런, 그럼 아가씨가 해 보세요.”
“예? 제가요. 에이 쑥스럽게.”
“이렇게 해 보세요. 열심히 힘을 길러 언제 남친에게 지리산 천왕봉에 가자고 하세요. 그리고 정상에 올라 큰 소리로 외쳐보세요. ‘ 자기야 사랑해. 우리 결혼하자’”

히말라야에서 8,000m급 14좌 등정의 꿈을 접어야 했던 고미영씨의 명복을 빕니다. 2009. 7.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