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부터 5년 후 정유재란이 일어나고 최초의 수군 전투가 또 거제도에서 벌어지게 된다. 1597년 7월 16일 거제도 북쪽의 칠천도 앞 바다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한산도대첩의 패장 와키사카가 이끄는 왜군에 의해 전멸된다. 3도 수군통제사 원균은 말할 것도 없고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등 역전의 용장들과 수군들은 칼에 맞아죽거나 수장되었다. 우리 수군의 최대 패전이요 적의 최대 승전인 이른바 ‘칠천도 해전’이다. 이 전투로 왜적은 그토록 염원하던 전라도를 거쳐 충청도 직산까지 파죽지세로 쳐 올라간다.

원균은 이틀 전인 7월 14일 적선(敵船) 600척이 도사리고 있는 부산진을 치기 위해 전군을 다 동원하여 진군했다. 그러나 이는 분명 무리한 도전이었다.
적은 이미 이순신을 역적으로 몰아 의금부로 잡혀가게 한 뒤라 무서울 게 없었고, 이미 5년 전 쌓아놓은 웅포, 안골포, 가덕도 왜성 등에서 육군과 수군 합동으로 조선 수군이 쳐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구나 조선군에 남은 것은 겨우 100척의 배, 풍랑은 거세고 무더위까지 기승을 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산도에서 부산진까지 하루를 꼬빡 걸려 달려가 보니 적은 유인만 할 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영도에 겨우 다다랐으나 해는 지고 바람이 거세지면서 선단은 오히려 대마도 쪽으로 밀리고 있었다. 가까스로 배를 돌려 가덕도로 돌아왔으나 적의 대 함대가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급히 몰아치니 조선군은 다시 거제도 북단의 영등포로 퇴각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도 매복해 있던 적에게 습격당하여 군사 400여명을 잃고 황망간에 옆의 칠천도 포구로 쫓겨 들어가게 되었다. 벌써 7월 15일 또 하루해가 이미 졌으니, 검은 구름이 보름달을 가려 하늘은 캄캄하고 바다물결만 드세게 치고 있을 뿐이었다.

이튿날 새벽 적이 한꺼번에 쳐들어오니 조선 수군은 맥도 못 추고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 날 원균은 적에 쫓겨 칠천도 뭍에 올랐으나 몸이 무거워 멀리 달아나지 못하고 소나무 아래 기대 있었다. 그의 뇌리에 온갖 상념이 떠올랐으리라. 무엇보다 닷새 전 사천 곤양에 있는 도원수 본영에 끌려가 권율에게 힐난을 당하며 곤장을 맞던 일이 생각났다.

‘네가 바로 눈앞의 적을 치지 않는다고 이순신을 모함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이제 네가 적을 치지 않으니 네 죄를 알렸다?’
그리하여 수치로 몸을 부르르 떤 원균이 앞 뒤 생각도 없이 적의 포위망 속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상념이 끝남과 동시에 새벽 찬 공기로 인해 몸이 다시 떨렸다. 그와 동시에 적의 무수한 칼날이 원균을 찔렀다.
거제도 서쪽의 한산도에는 이순신이 영원히 살고 북쪽의 칠천도에는 원균이 영원히 사라졌다.

또한 권율은 이치전투로 영웅이 되고 이로 인해 도원수까지 되었지만, 훗날 조선 수군을 수장시키는데 큰 일조를 했으니…

후일 ‘선조실록’에서 사관은 이렇게 썼다. ‘권율은 사람됨이 용렬하고 범상하여 별로 칭찬할 만한 명성이 없다. 그런데 마침 기회를 만나 행주에서 대첩을 올렸으니 공(功)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도원수라는 중임을 맡게 되어서는 속수무책으로 한 가지 일도 조치한 것이 없었다. 아! 배운 것이 없고 지모(智謀)도 없는 이 같은 무리에게 중책을 맡겼으니 국가에서 어찌 그 직에 알맞은 사람을 임용하였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일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한산도와 칠천도! 분명 영웅들이 탄생한 곳이다. 전란이 끝나고 조정에서는 선무공신(宣武功臣)을 선정했다. 1등에 이순신, 권율, 원균 3명만이 차례대로 올려졌다. 지금 한산도에는 15만 평의 충무공 유적지에 관광객의 노래가 울리고, 칠천도에는 수령 5백년이 넘는 동백 숲이 자지러지게 붉은 꽃을 피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