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육군 ‘일병 김영준’이다. 벌써 6개월째인 베테랑(?) 일병이지만 이 계급장을 달고 여기에 있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때문에 일반인들이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 지금 내가 군에 오기 전에도 그랬으니깐 - 내 가슴의 일병 계급장은 내겐 더없이 소중하고 자랑스럽다.

군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았다. 처음엔 그냥 얼떨떨했다. 어떤 친구들은 “잘 됐다” “부럽다”고 했고 어떤 친구들은 “그래도 남자라면 군대에 가야되지 않겠냐”고 했다. 가족들의 생각도 반반이었다. 어머니는 좋아하셨고, 아버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고 하셨다. 나도 많은 생각을 했다. 내 나이 스무 살. 대학에 다니고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고 친구들과 술 마시고 노는 걸 즐기는 평범한 남자, 아니 남자라는 말보다 “아이” 라는 말이 더 어울렸을 지도 모른다. 몸은 다 컸지만 가족에게 의지한 채 살고 있었다. 아주 부유하진 않았지만 어렵지 않은 가정환경으로 별 어려움 없이 스무 해를 보냈다. 하지만 병역이라는 큰 문제에 부딪혔을 때 나는 그 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다.

분단된 조국의 결코 어리지 않은 남자, 그게 바로 나라는 것이 처음엔 실감나지 않았지만 신검을 받고 친구 녀석들이 한 둘 입대하는 것을 보면서 몸에 와 닿았다.
“신체등급 4급, 공익근무요원 28개월...” 난 부모님께 말씀드렸다.“라식수술”을 하겠노라고. 어머니는 조금 놀라셨고 아버지께선 잠시 말이 없으시더니 그러라고 하셨다.
시력 교정 수술을 받은 후 재검을 받고 2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이다. 나약한 내 겉 모습을 깨고 좀 더 “성숙한 남자”가 되기 위해서였다. 2년 2개월 동안 날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곳에서 전혀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적응을 하고 내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면 “내가 원하는 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2002년 11월 5일, 막상 입대 날이 되니 초조했다. 혹시 내가 잘못된 결정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훈련소에서나 자대에 와서나 하루하루는 너무 길게 느껴졌다. 바쁜 날은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하지만 벌써 일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고 어느덧 다음달이면 내 가슴에 상병 계급장이 붙는다.

때론 야속하지만 생각해보면 언제나 내 바람막이가 되어 나를 감싸주고 나를 지켜주었던 선임병들,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못하던 불과 몇 달 전의 내 모습을 닮은 후임병들, 이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전우들 속에 내가 있고 내가 역할을 다 하기에 우리 부대가 있고 우리 군이 있고 우리나라가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 하루를 보낸다.

나약한 마음에서 한 걸음만 나아가 자신감과 인내심을 갖는다면 힘든 일들이 한결 쉬워질 것이다. 이 생각은 평범한 생각이지만 군 생활을 하며 크게 실감하고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나 같은 행동을 강요하고 싶진 않다.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몸이 좋지 않다면 그 사람이 해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병역을 이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좀더 강하고 자신감 있고, 진취적인 남자가 되길 원한다면 나 같은 길을 걷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