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무행정발전 시민참여위원들과 함께 육군훈련소에 다녀왔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연병장에 줄지어 서 있는 자랑스럽고 씩씩한 어린 후배들을 지켜보자니 30여 년 전 내 젊은 시절이 생각났다. 그리고 군 복무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내 인생을 통째로 바꿔버린,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 있었으니....

1969년 4월 11일 대학교 2학년 초, 휴학을 하고 군에 입대했다. 육군훈련소 6주 훈련과 전북 금마에서 후반기 4주 훈련을 받은 후 양구군 동면에 위치한 00연대에 배속, 처음에는 본부 PX에 근무하였으나 곧 전투지원 중대의 PX(충성클럽) 요원으로 파견되었다. 편하기가 그지없는 생활이었다. 다른 중대요원들이 훈련이다 교육이다 하며 흙 범벅 땀 범벅이 되어 고생할 때 나는 한가하게 PX에서 물건이나 정리하고 있다가 저녁에 대원들이 돌아오면 막걸리나 오징어 등을 팔면 되었다. 아직 젊을 때라 내게 온 이 행운에 우쭐한 기분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편한 생활도 잠시(1개월), 나는 내 인생에 평생 잊지 못할 아픈, 그러나 나중에는 내 인생에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순간을 만나게 된다. 당시 부대 막사 이전과 함께 PX판매소도 옮기게 되었는데 미처 물건들을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단 검열관이 불시에 점검을 나온 것. 여러 가지 지적을 받게 되었고, 그 책임을 물어 결국 나는 수색중대로 전속을 가게 되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편하디 편한 PX요원에서 하루아침에 최전방의 철책선 수색중대 요원으로 전속되다니. 극에서 극으로 추락하던, 그 두렵고 아찔했던 심정은 당해 본 사람만이 알리라. 남들은 한 번 거치는 두려움의 통과의례를 나는 두 번씩이나 거쳐야하는 기분이었다.

수색중대는 PX와는 너무도 달랐다. 수색중대로 전속명령을 받고 간 그 날부터 그야말로 엄한 군기와 긴장 속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낮에는 제식훈련에 각개 전투 등 고된 훈련을 받아야했고, 저녁에는 철책선 잠복근무를 나가서 뜬눈으로 경계를 서야 했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나 자신이 한심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전화위복이라던가! 힘들고 고된 훈련의 감내 속에서 내 의지력은 어느새 돌멩이처럼 단단해져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나약했던 내가 강한 정신력을 가진, 인생과 세상을 보다 크고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청년으로 바뀌어져 간 것이다.

평생 잊지 못할, 눈 앞이 캄캄하고 아찔했던 그 순간이 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을 새롭게 리모델링 하는 기회가 되었고, 복학과 동시에 행정고시공부에 전념해 인생을 역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 PX요원으로 계속 남아 있었다면, 군 생활은 편했겠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나이로서의 투지력과 의지력은 결코 기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군 생활이 편하고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나이로 태어나 반드시 한 번은 경험해 볼만한 귀중한 기회” 이며, 이 세상 어디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소중한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곳이 군이라는 것을 나는 평생 잊혀지지 않는 그 때 그 사건으로 인해 절절하게 깨우쳤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