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이곳은 국방의 의무라는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천지다. 밥벌이가 목적인 나를 포함한 일반종사원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징병전담의 선생님들이 그렇고 옆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용호 오빠야를 포함한 공익친구들이 그러하고 신체검사 결과서를 보면서 심각하게 지나가고 있는 19살 먹은 젊은이들이 그러하다.

군대를 못갈 정도로 아픈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신체검사는 물론이고 군대도 가 보지 못한 나이기에 ‘남자라면 당연히’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이제는 아픔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요전에 정신과적으로 문제가 있는 의무자 엄마와 상담하면서의 일이다. 검사장에서의 정신과 질병이라면 늘상 보는 것이라 때로는 상담자체가 아주 사무적일 수밖에 없다. 그날도 예외 없이 평이하게 상담하고 있는데 앞에 앉은 엄마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게 아닌가.

“당신은 아픈 자식을 둔 부모 마음을 아능교” 우리 아이도 저 아이들처럼 건강해서 군에 갔으면 좋겠심더. 내가 지금 자식 병을 가지고 거짓말 치겠는교?” 라고 말씀하시면서 울먹울먹하신다.
순간 ‘내가 무얼 잘못했지, 내가 실수한 말이 있나’ 곱씹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다만, 면제되지 않는 만약의 경우에 대해서도 설명한 것이 엄마에게는 비수처럼 꽂혔던 것이다.

그 이후로는 아픈 아들을 데리고 오는 슬픈 엄마의 눈망울을 아니 허망한 눈빛을 볼 때 그 마음이 얼마나 아릴까 조금은 헤아리려 애쓴다. 그 엄마들은 여기 오시면 다른 아이들이 부러워 한참을 보고 계실 때가 많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평범한 것들이 자기 아이에게는 왜 그리 힘든 일일까 하고 느끼시면서. 순간 신체검사라고 하는 과정을 겪게하는 것이 그에게는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그의 아이가 다른 아이와 다름을 또 한번 실감하게 해주는 곳은 아닌지. 지나가다가 이곳을 보게 되면 어떤 기억을 떠 올릴까, 분명 유쾌한 기억은 아니리라.

사람이 커간다는 것이 이런 것인지, 의무니까 당연히 그리 해야된다라고 느꼈던 것들이 이제는 누군가를 슬퍼하게 하거나 비참한 느낌이 들게 하는 일은 없는 지 돌아보게 된다.
여러사람 앞에서 아픈 사람 이야기하라고 하면 건강한 아이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말 아픈 사람이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손을 들어 자기가 아프다는 것을 말하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마다 건강의 정도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지만 우리 사회에서 아프다고 하는 말은 대부분의 경우 열등 곧 낙오의 가능성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아플 수 있지만 어떤 아픔은 장애와 상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열등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그런 걸 뻔히 알면서 아프다고 용감하게 말할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얼마 전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묻는 모양새가 어물어물한다. 내용인 즉 고환결손인데 신체검사 받을 때 이야기를 못했다고 한다.
‘선생님도 남자고 주위에 다 남자들뿐인데 뭐가 창피해서 말하지 못했느냐’고 물어보고 난후 친구들 앞이라 부끄러워 할 수밖에 없는 경우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은 아닌가 하고 되돌아보게 되었다. 더군다나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수치로 치부하는 정신과 질환이나 비뇨기과 계통의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에는 말하여 무엇하리.

30평도 안되는 이 조그마한 공간에서 참으로 많은 모습의 젊은이들을 보게 된다. ‘말 한마디 않고 조용히 가는 사람, 자기가 느끼는 아픔만큼 급수가 나오지 않는다고 억지 쓰는 사람, 제대로 알아들을 생각도 없으면서 설명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면 안 아픈데 없다고 엄살떠는 사람, 3급은 기분 나쁘다며 1급 달라고 용감하게 말거는 특전사 지망생 등등…

신체검사를 받고 돌아가는 이들의 얼굴위에 ‘빡빡 머리 깎고 훈련소 입소하는 모습, 훈련소에서 뒤돌아서서 ‘어머니-’ 하고 부르면서 우는 모습, 총 들고 전방에서 보초서는 모습’ 이런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은 왜 일까. 한 없이 어려보이고 철없어 보이고 억지 부릴 때는 한대 콕 쥐어박고 싶을 만큼 얄미운 때도 있지만 이 젊은이들이 우리의 전방을 지키고 타국에 파병되고 산업현장에서 열심히 땀도 흘릴 것임을 알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훗날의 모습을 생각하면 미우니 고우니 해도 그네들은 존재 자체가 진정 챔피언일 수밖에 없다. 그 챔피언들이 어디서든 소중한 존재로 대접받기를, 그리고 여기 근무하면서 만나게 되는 많은 19살 젊은이들을 정당하게 대접하기 위해 애써야함을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다.

끝으로 의사보다는 변호사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설득 잘하시는 수석선생님, 물음에 항상 성실하게 답변해주신 내과선생님, 어눌한 의학상식 가지고 억지 부리는 젊은이들 때문에 제일 열 많이 받으신 외과 1ㆍ2 선생님, 그 외 같이 근무해주신 전담의 선생님들 그리고 병무행정(?)을 너무 잘 알아 별명이 곽주사인 민혁이, 몸을 불살라 일하는 살인미소 용호오빠야, 그 외 1층 고시장에서 열심히 일해 준 공익 친구들, 7개월이라는 만남의 시간을 맺어준 인연에 감사하며 모두에게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