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부턴가 자연으로부터 소외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짧은 봄에 긴 여름 그리고 가을인가 하면, 어느 새 쌀쌀한 겨울로 접어들곤 했던 나의 삶들. 시계추처럼 일상적이던 하루하루가 반복되던 도심생활의 단조로움속에서 업무의 연장선에서의 전방부대의 견학은 기대와 설레임으로 눈빛조차도 반짝거리게 하는 것 같았다.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시월의 아침 양수리를 지나 의암호를 거쳐가는 강변길은 환상처럼 아름다웠다. 길게 산 그림자를 드리운 물빛과 그 위의 춤추듯 반짝거리는 햇빛, 강섶에 흐드러진 억새풀과 아름다운 나의 동행자들.... 이어폰에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내게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시작이었다.

우리가 가고 있는 곳은 강원도 화천에 있는 7사단이었다. 칠성부대로 아주 역사와 전통이 있는 부대라고 하였다. 노란 은행잎이 부드러운 양탄자처럼 길위에 뿌려진 정문을 지나 부대에 도착하자마자 멋진 군악대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동영상으로 제작된 부대의 안내가 너무도 자세했고 부연설명을 해주신 참모장님의 말씀도 아주 인상깊었다.
특히 그곳 화천은 비목의 고장으로 25년전 백암산 지역에서 장교로 근무했던 서울 시립대 한명희교수님이 철책 순찰중 백암산 기슭에서 돌무덤을 발견하고 한적한 해질녘의 정서와 탄피를 보며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이름모를 용사를 떠올리며 지은 시라고 한다.

그 후 곡이 붙여져 현재 잘 알려진 가곡 “비목”이 탄생하였고 칠성부대의 “단가”로 자리할 정도로 의미가 깊다고 했다. 1995년에 비목공원을 조성하고 매년 6월6일을 전후로 비목문화재를 실시하고 있다는데 비목문화재는 분단과 이산의 아픔을 승화시키는 추모의 자리이며 평화적 남북통일을 열망하는 국민모두의 희망을 노래하는 평화의 자리라는 것이 아주 인상깊었다.

또 칠성부대는 영천지구 전투에서 적 2개사단을 궤멸시키고 반격작전의 결정적인 발판을 마련하여 38선을 돌파하여 북진하였고, 이승만 대통령께서 평양만은 국군이 먼저 들어 가야한다며 10월18일 여명을 기해 공격하여, 단독으로 대동강을 건너 인민군이 전선 사령부로 사용하던 김일성 대학 옥상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한국 전사에 길이 빛날 자랑스러운 금자탑을 세웠다고 한다.

가슴뭉클한 순간이었다.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10월18일은 칠성인의 날로 정해 각종 행사를 개최해 선배 전우의 투혼을 본받고자 노력한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군복으로 갈아입고 철모를 쓰고 칠성전망대를 향해 도보행진을 했는데 가파른 언덕길을 계속 이어가는 그 길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 머리에 뒤집어 쓴 철모는 왜 그리 무거운지... 산등성이에 다다르자 425고지 전투비가 있는 칠성전망대가 나타나고 눈앞에는 철책선이 겹겹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때서야 아.. 전방이란 이런거구나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칠성전망대는 북녘땅 1.5키로미터 전방에 있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과 남녘땅 모두 철책이 이중 삼중으로 겹겹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쪽 저쪽 철책이 서로 다르지 않았음에도 차로 힘차게 달리면 30분 거리밖에 되지 않을 곳이었다. 이념이 무엇이고 사상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저 눈앞의 아름다운 산을 갈 수 없는 것일까.
그곳 초소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망원경으로 바라다본 북녘땅은 한발만 내밀면 닿을 듯했다. 묘한 긴장감과 평화로움이 공존하는 군사경비구역과 삼엄한 철책선은 주야가 바뀌어 근무해야 한다고 했다.
그 곳의 근무환경, 살을 에이듯 차가운 기온, 왜 그리 군복은 얇게만 느껴지는 지, 그네들의 그리움에 젖은 맑은 눈빛은 가슴을 저럿저릿하게 만들었다.
길고 기다란 철책을 따라 걷노라니 잊고 살았던 분단의 아픔이 바람따라 밀려왔다. 긴장과 평화로움이 공존하는 그곳에서는 흐드러진 억새풀과 붉게 물든 나뭇잎조차도 너무나 쓸쓸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