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즈음 이러한 아버지의 확고한 신념과 나의 ‘치기'는 1953년 이후 50여년 이상을 서로 마주보고 있는 휴전선만큼이나 크게 대립하고 있었다.
입대 당시 세상은 직격탄에 맞아 숨진 어느 대학생의 이야기로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었고, ‘군부독재 타도'의 거센 물결이 온 거리를 휩쓸고 다녔으며, 병역거부와 문무대 입소거부(대학생 병영교육) 또한 당시 입대를 앞둔 또래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또 시국참여와 군대거부가 어쩌면 당연시되던 시기였다. 나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의지'를 일순간 무너뜨린 것은 역시 아버지.
어느날 아버지는 나를 꿇어앉힌 자리에서 망치로 자신의 왼쪽 엄지손가락을 내리친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집안의 가장이 역할을 못해 아들의 인생을 올바르게 이끌지 못했으니, 그만한 죄를 받아야 한다'는 것. 다행히 뼈는 괜찮았지만, 엄지손톱 한쪽이 뭉그러져 마치 ‘세워놓은 초승달' 모양이 됐다. 그날 이후 입대 준비가 착실(?)하게 진행됐음은 물론이다. 

새벽 1시를 넘기면서 점점 커지는 대남방송마냥 한파도 점점 그 위세를 강하게 떨치기 시작했다. 체감온도로만 따져도 영하 30도는 충분했을 것이다. 내쉬는 숨이 얼어붙어 입 주위에 고드름을 만들고, 방한장갑 속에서 오돌오돌 떠는 손마디는 감각을 잃었다. 또 매복지점으로 이동하느라 땀으로 축축해진 양말이며, 속옷은 벌써 돌처럼 단단한 얼음이 되어 살갗을 찌르고 있었다. 오히려 어깨 위에 수북히 쌓이는 눈덩이가 비무장지대의 살인 한풍을 막아주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몸은 더 이상의 역할을 거부하는 듯 무감각해지기 시작했다. 그 추위 속에서도 졸음은 잊지 않고 찾아왔다.
“졸면 안돼! 죽어. 일어나 임마.”
누군가 옆에서 소리 죽여 외쳤지만, 깊은 나락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잠 속으로 빠져들며 참으로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위도 잊고, 졸음도 잊고….

정신이 든 것은 철책근무 소대 내무반.
“이제 정신이 드나, 이것 좀 마셔라.”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중대장이 건넨 것은 따끈한 우유 한잔. 사실 따지고 보면 우유라기보다는 분유에 물을 부은 것. 그러나 단지 탈지분유에 뜨거운 물을 붓고, 설탕 몇 스푼 대충 넣었을 뿐인데도 그 맛은 입대날 아버지가 주머니에 ‘푹' 찔러 준 알사탕만큼이나 달콤했다.

돌아가는 수송차 안에서 우유 한잔을 따라주며 어깨를 두드려주는 중대장의 모습이 아버지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