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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내가 군에 입영한 것이 부모 곁을 떠난 유일한 외출이었다. 하늘을 나는 새만 보아도 집 생각이 절로 나고 훈련소 부근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은 더욱 향수를 자아냈다. 지나간 하루하루를 달력 위에 펜으로 지워 없앴건만 전역일은 까마득하고 신병 점호에 꽉 짜인 교육일정은 고향과 그리운 어머니 생각을 더욱 절실하게 만들었다. 이런 생각은 자대배치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군 생활 중에 한 두 번은 모두가 경험하게 되는 공통점이 아닌가 싶다.
이런 나날이 계속되던 중 어느 날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고참 병장이 전입신병들을 집합시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신병이라서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나도 신병의 과정을 거쳐 왔고 참고 지내면 언젠가 나처럼 전역하는 날이 온다. 내가 잘나서 전역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때가 되었기에 전역한다. 너희들도 호박처럼 둥글 둥글 살다가 꼭지 떨어지면 전역하는 것이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사 뒤 물탱크 둑에 누군가가 심어놓은 호박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호박은 구황작물보다 훨씬 먼저 전래되어(삼국시대) 서민들의 민생고를 해결하였고 한국의 토양과 기후에 스스로를 적응시킨 결과 한국의 대표적인 식물이 되었다. 사방 주위에 누가 심었는지 모르지만 지천으로 널리 퍼져 무럭무럭 자라나는 호박의 왕성한 생식력이 우리 한민족의 발자취를 증명해 준 것 같다.
호박은 빈부를 떠나서 어느 가정에서나 필수적으로 재배한 탓에 오히려 그 희소성이 약화되어 천대를 받은 느낌도 든다. 줄기 열매 잎이나 꽃 어느 것 하나 다른 식물이나 꽃에 비해 잘난 것이 없다. 애들의 축구공으로 장난감으로...... 그럼에도 오늘날 호박은 도농빈부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잘 익은 호박의 껍질을 벗기기 위해 온 가족이 호박 주위에 둘러앉아 대화를 하게 되고, 잎은 쌈밥용으로, 열매와 씨는 식용으로, 꽃은 꿀을 따는 벌의 안식처가 되고 있지 않은가? 어찌 그 뿐이랴! 호박의 생김새를 보라! 고참병의 말처럼 네모나 세모형도 아니고 그렇다고 오이나 가지처럼 길지도 않는 원만한 둥근 형이다. 가시가 없어 모두를 포용하며 수박처럼 풍미한 맛으로 인간을 유혹하지 않으면서도 항상 우리 곁을 떠날 줄 모르는 고마운 식물이다.
나 역시도 호박처럼 살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다. 금과옥조로 여기던 헤어스타일을 (드라이하고 스프레이 뿌리고) 바꾸었더니 아침 시간이 훨씬 여유가 있다 종전에는 아무리 찌는 더위에도 헤어스타일이 망가질까봐 냉방장치 없는 택시는 타지 않았고 상가에 가서도 007가방 속에 가져간 헤어드라이어를 꺼내 드라이하기 위해 이 지역 전기는 100볼트 입니까? 220볼트입니까? 또 전기 꽂는 콘센트는 어디 있나요? 등을 울고 있는 상주들에게 물어보았던 지난날을 회상하니 부끄러운 회상과 더불어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틀에 박힌 사고의 전환점이 된 호박! 뒤뜰에서 주인도 없이 누구 보살핌도 없는 박토에서도 환경에 적응하여 호박 나름대로의 운명을 개척하여 한국의 대표적 식물로 영역을 확보한 호박처럼, 혁신과 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이 때, 우리 공직자 모두가 지녀야할 덕목으로 호박의 속성에 대하여 재평가해보는 것은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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