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의 겨울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못했다.
조선시대 한양에 과거보러온 시골선비같은 심정으로 면접 전날 청사근처 숙소를 찾아 헤맸는데 지방에서 상경한 수험생이 나 뿐만은 아닌지 여관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다행히 한 곳을 어렵사리 구했는데 이름만 ○○○장 이지 시설은 TV에서나 나옴직한 허름한 여인숙같은 곳으로 그나마 하나 남은 방은 천장에 구멍이 뻥 뚫린 시원스런 방이었다. 기차여행 5시간 끝에 밀려온 피로보다 더 빨리 찾아온 것은 내일 있을 면접걱정이었다. 혼자만의 자격지심인지 그다지 자신없는 외모와 언변, 아이 둘에 남편, 서른여섯이라는 고령의 나이는 어느 면접관이 보더라도 그리 호감가는 조건은 아닌 것 같았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그러나...

밤새도록 술마시며 떠들어대 방음시설 하나 안되어 있던 숙소, 옆방 투숙객 때문에 잠 한숨 못자고 뒤척이다 드디어 날이 샜다.
아침공기가 싸늘하니 상쾌한 기분마저 드는 중앙공무원교육원에는 깔끔하고 단정해 보이는 응시생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있었다. 모두들 총명하고 어려보여 도대체 여기서 누가 탈락될까 싶었다. 나말고는.

느낌이 좋지 않다.
내가 속한 면접조에서 순서가 맨 마지막인데다가 우선 면접받은 응시생말로는 면접관이 꽤 까다롭단다. 지난밤 잠 한숨 못잔데다 두시간 여를 초긴장상태에서 기다리려니 차라리 포기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청년실업이 넘쳐나는 지금 이 시점에 젊지도 그렇다고 유능하지도 않은 서른여섯이나 먹은 아줌마가 뭐한다고 나왔나 하는 자괴감마저 드는데 드디어 호명되었다.
넓다란 실내에 타원형의 커다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두 명의 면접관과 마주했다.
“정정미씨, 마지막이라 많이 기다렸겠네. 근데 수험생 중에 나이가 최고령인것 같네, 그렇담, 그사이 뭐 사회생활 한거 있어요? 그리고 지원동기는?”
아니나 다를까, 나이를 먼저 지적하고 들어가네, 그러나 사회생활 이 부분은 기다렸던 바였다.
“네, 천구백구십육년, 아니 천구백구십구년...아니 일천구백구십육년....

아니 이게 아닌데 내가 왜이러나.
‘천구백구십육년부터 이천년 유월까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주민에 봉사한 공직경력이 있습니다. 다시한번 그 경험을 살려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싶습니다'
머리 속이 텅비고 말이 입안에서 맴도는 것 같다. 너무 망신스럽다. 말더듬이도 아닌데 기껏 1996년이라는 연도를 한번만에 자신있게 내뱉지 못하고 마치 코미디프로에서나 있음직한 행동을 하다니.

오히려 면접관들의 얼굴에 당황함이 역력하다. 그러나 다행히 호의를 베풀어 주신다. 너무 초조하면 한번씩 말을 더듬으니 편하게 생각하고 긴장풀라고. 그 다음은 생활영어와 경제분야질문으로 앞의 실수를 만회할 생각으로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답했다. 그치만 너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