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인간이라는 사회적 동물로 이 지상에 초대받은 이상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규율을 따를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대한민국의 법』, 그것도 그 나라 존속자체와 직결되는 법을 거부하고 나라가 위기에 처해 부모 형제가 죽어 가는 데도 총을 들지 않겠음을 주장하는 그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이란 말인가!
지금 징병제를 택하는 80개국 중 40여 개국이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다고 했으나, 나머지 반 이상이 이를 허용치 않는 이유가 단지 인권후진국이기 때문이 아니다.
흔히들 우리처럼 분단을 겪은 독일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음을 강조하는데, 이는 독일이 주변 국가에 대하여 침략을 자행해 온 역사에 대한 반성이라는 배경이 있었고, 우리는 국방의무를 최상위법인 헌법상에 엄연히 규정하고 있지만, 독일의 경우 병역의무는 기본법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또, 대만은 전통적인 불교국가라는 문화적 특수성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극히 적고, 또 사이비 신자의 양산에 대한 우려 또한 크지 않으며 무엇보다 병역자원이 남아돌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도를 허용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스위스는 수 백년 간 침략을 받은 일도 없는데 단지 강대국이 인접해 있다는 것 한가지만 가지고 자립과 독립의지를 지키려고 철저한 개병제 국가로 일관하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병역은 50년이 아니라 수 천년간 이 땅을 지켜온 신성한 의무, 병역의무를 대체할 제도는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없어
대체복무제도란 현역병으로 충원하고 남은 자원을 형평성 있는 의무부과차원에서 기간산업육성이나 기타 공익목적을 위해 활용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지금은 병역자원의 감소로 기존의 대체복무제도마저 축소 내지 폐지해야 할 형편에 있으며, 이러한 때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새로운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하라는 것은 나라의 형편은 안중에 없는, 무리한 요구라 아니할 수 없다.
또, 백 번을 양보해 대체복무제도를 허용한다고 치자. 극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양심을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식별해 낼 것이며, 양심적 병역거부자수를 산정할 객관적인 잣대를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특히 현재 대체복무지원 인력은 군 소요의 충원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한해에 일정부분을 할당하는 방법으로 운영하고있는데, 만약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대체복무인력으로 지정, 활용한다면 과연 얼마를 할당해야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양심의 발생한계를 객관적인 수치로 산정하고 할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라고 표명한 사람을 무한정으로 인정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약점을 악용 사이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속출할 가능성은 불을 보듯 확실하며, 이는 나라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참으로 걱정스러운 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자신들의 양심은 50여 년을 한결같이 지켜온 신념이며 이를 이제 국가가 외면만 할 게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세워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병역은 50년이 아니라 수 천년간 이 땅을 지켜온 신성한 의무이다. 더욱이 법을 지키며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무참한 꼴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善政」이라 한다면, 양보나 타협은 없고 자기주장만 있는 소수 때문에 나라자체가 위험해 질 수 있는 일은 애초에 막는 것이 오히려 국가가 할 일이라 생각한다.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병역의무를 대체할   제도는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없으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기간을 얼마로 산정하든 다른 젊은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희생에 무임승차한 대가로 충분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