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라-이!(All right)나 한글 깨우침에 얽힌 에피소드들. 특히 연순이 글 배운 보람을 느끼며 아무데서나 써진 글을 읽다가 읽어서는 안될 글자까지 읽을 때! 극장은 온통 폭소의 도가니가 된다.
그리고 너무나 귀여운 어린 삼촌이 만들어내는 웃음 역시 이 영화를 사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70년대 초 유행했던 가요를 어쩜 그리도 능청스럽게 불러대는지. ‘님과 함께'를 부르며 딱지치기를 할 때 진국이 지나가다 퍽 소리가 나도록 뒤통수를 쳤는데도 얼굴 한 번 찡그리거나 돌아보는 일 없이 여전히 천연덕스럽게 노래를 부를 때는 그 시대의 정서를, 어린 삼촌의 성격을 기가 막히게도 잘 표현했구나 하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또 연순이 해물전을 돌리던 장면은 장이모의 ‘집으로 가는 길'을 연상케 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연순의 힘찬 달음박질에는 솟구치는 열정과 생의 희열 같은 것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사랑이 그렇게 벅찬 것인지, 그렇게 환희로운 것인지. 하기사, 사랑한다는 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거라고 했으니까.
이렇게 싱그럽고 고운 사랑을 나눈 두 사람, 게다가 첫사랑 아닌가. 서투르고 맹목적이어서 자신도 모르게 전부를 던져 빠져들던 사랑… 여자들이 남자의 첫사랑은 관까지 간다고 이죽거리면, 남자들은 여자의 첫사랑은 저승까지 간다고 시샘어린 우스갯 소리를 해댈 정도로 강한 자국을 남기는 일생일대의 사건. 엄마가 회심의 미소를 짓는 마지막 장면도 그 사랑의 그림자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슬쩍 암시한다.
그러나 죽고 못살던 절절하던 사랑도 결혼이란 현실을 만나면 또다시 모습을 바꾼다. <인어공주>란 제목은 원래 연순이 해녀이기 때문에 생긴 제목이겠지만, 영화의 주제와 관련시켜보아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미녀, 신데렐라와 같은 이야기들이 대체적으로 같은 결론을 내리는데 그것은 여자들이 사랑을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그저 미모 하나로 왕자의 눈에 들어 결혼하고,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을 낸다는 점이다. 이런 무책임성에 반기를 들고 ‘백설공주 결혼 후의 이야기' 같은 책도 여럿 나오고 있는 요즘이지만 그것에 비하면 인어공주는 다분히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백설공주가 한 번 본 남자로부터 먼저 프로포즈를 받을 때, 인어공주는 그녀 자신이 먼저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고 사랑 때문에 고민하고 결국엔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버린다. 사랑에는 달콤함만이 아니라 사람을 다치게하고 죽게까지 하는 무기가 들어있다는, 사랑의 이면까지도 꿰뚫어보고 있는 것이 인어공주의 힘이다.
영화 <인어공주>도 이 진실에 충실하다. 연순이 먼저 사랑을 느꼈고, 죽을 뻔했으며, 비록 결혼을 했 다 하더라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아닌 맵고 짠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어공주가 왕자(사랑)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했 듯, 연순의 힘든 삶 속에도 여전히 남은 사랑이 있어 이 세상이 살아갈만한 것이고, 나영 역시 그 사랑을 통해 부모를 이해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지순한 사랑에 대한 동경은 여전한 듯 하다. 쉽게 사귀고 쉽게 헤어지는 ‘인스턴트 사랑'은 편할 수는 있어도 급하게 생겨나서 빨리 성장하는 식물처럼 악천후를 견딜 수 있는 뿌리를 가질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세상에 나온 만큼 누구나 한번쯤은 가슴에 품어보는, 빛나는 젊은 날을 기억할 풍요로운 추억을 만들기가 힘들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저울질에 의한 만남이 늘어가도 사람들은 여전히 청순한 사랑을 꿈꿀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영혼을 지닌 존재이고, 영혼은 맑고 깨끗한 것을 좋아할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