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은 전라도 관군 승장이 이끄는 천 여 승병과 피란민들, 그리고 치마까지 짧게 자르고 나온 부녀자 만 여 명 앞에서 외쳤다.
‘수만의 적군을 눈앞에 두고 조국의 운명을 이 싸움에 걸고자 한다. 병력의 세기는 물의 형세같이 일정치 않으매 오늘 승패는 우리의 마음과 그 담략에 있다. 오직 죽음으로써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것이다. 사나이가 기개에 따를 뿐이지 어찌 공명을 논할 것이냐, 오직 한 마음으로 죽기를 맹세하자.'권율의 외침에 장병과 백성들은 비장한 결의로 병기를 가다듬고 몸을 추슬렀다.

적은 7대로 나눠 공격해왔다. 고니시의 1대는 평양에서의 패배를 씻으려는 듯 맹렬히 쳐들어왔다. 그러나 우리의 화차, 수차석포, 진천뢰, 총통이 일제히 불을 뿜고 화살이 빗발같이 쏟아지면서 적은 궤멸되고 말았다. 2대, 3대가 무너지고 드디어 총사령관 우키타가 지휘하는 4대가 쳐들어왔다. 강력한 돌진에 우리 외성이 무너지며 도망자가 속출했다. 권율이 도망하는 군사 하나를 칼로 베어 그 목을 칼끝에 꽂아 높이 쳐들고 외친다.
‘후퇴하는 자는 이렇게 벨 것이다'
가까스로 진영이 유지되면서 모든 화력을 적장에게 쏟아 붓자 우키타가 화살을 맞고 말에서 떨어져 퇴각하고 만다. 5대, 6대에 이어 7대까지 쳐들어오니 서북쪽 승병 진지가 마침내 뚫리면서 내성까지 돌입할 지경이 되었다. 권율이 대검을 뽑아들고 승병의 총돌격을 명해 백병전이 치열해졌다. 화살이 떨어지고 행주치마로 건네는 돌멩이까지 바닥이 났다.
이때 기적이 일어난다. 한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배가 있었다. 강화도에 있던 의병장 김천일이 의병 3백 명과 함께 배에서 내렸다. 79세의 충청병사 정걸은 병정들을 독려하여 화살 뭉치를 배에서 부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의기가 솟고 왜적은 기가 꺾였다. 아침 6시부터 시작한 전투는 저녁 6시에 우리의 일방적 승리로 끝이 났다. 백에 하나의 승산도 없던 이 전투에서 우리는 크게 이겼다. 왜적 3만은 큰 타격을 입었고 요시카와, 이시다, 아사노 대장에 이어 총사령관마저 중상이었다.

이 행주대첩으로 권율은 일시에 유명해졌다. 명나라 황제는 홍단초 4필과 백금 50냥을 상으로 내렸으며 명의 문무 장관들은 ‘이 사람이 전날 행주에서 크게 이긴 사람이 아닌가?' 라며 만날 때마다 경의를 표하곤 했다.

권율은 영의정 권철의 5형제 중 막내였다. 그는  부친을 닮아 키가 크고 몸집도 거대했는데 호연지기를 기른다며 강산을 누비고 과거를 보지 않았다.   그가 부친이 돌아 간 후 비로소 공부하여 2년 만에 과거에 올랐다. 그때 나이 이미 46세였다. 친구 윤근수는 고관대작이었고, 사위 이항복조차 2년 전에 등과했다. 늦깎이 문관 권율이었지만 전쟁에서는 몸소 칼을 차고 앞에 나서곤 했다. 작년 7월 이치에서   적을 물리칠 때도 칼로 도망치는 군사를 베며 진영을 가다듬었다. 이번 전투에서도 도망자를 베며 앞장서서 적을 격퇴한 위세로 싸움을 이겼다. ‘공명보다 오직 기개로' 싸움에 임하는 그야말로 진정 전쟁의 영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