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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한 후 다시 삼도수군 통제사로 복귀하여 몰락한 조선 수군의 남은 배 12척으로 서진해 오는 왜군의 대 선단과 맞서 승리한 것이 저 유명한 명량해전이다. 1597년 10월 26일 이순신함대는 울돌목 좁은 해협에 진을 치고 왜군과 필사의 일전을 벌여 승리했다. 여기서 우리는 잊지 말고 영원히 기억해야할 이름들이 있다. 그 날 울돌목에서 이순신 장군을 도와 함께 싸운 이 고장의 민초들이다. 해남의 오극신, 오계적 부자는 호남의 의병으로 여러 싸움에서 늘 큰 공을 세웠는데 명량해전에서 돌과 창으로 왜적과 맞서 싸우다 부자가 한날 한자리에서 전사하니 충무공이 나의 오른팔을 잃었다며 탄식했다 한다.
마하수 일가 5부자의 혈전도 의병항쟁의 표본이다. 부친이 적선에 포위된 이순신을 구하다 적탄에 맞아 전사하자 그 시신을 안고 일성 통곡한 마씨 형제들은 적이 패퇴할 때까지 결사의 항전을 그치지 않았다 한다.
조응량 부자와 양응지 숙질도 의병으로 참전하여 명량해전에서 낫과 곡괭이 등 연장으로 적을 무찌르다가 승리를 눈앞에 두고 전사하니 보는 이들이 모두 슬퍼하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폐선을 밤낮으로 수리하여 명량해전을 가능케 한 사람들도 있었다. 정충량, 김세호 등과 함께 전쟁준비에 혼신의 힘을 쏟은 무명의 선장과 목수들이었다. 그리고 이 고장 부녀자들까지도 밤이면 언덕에 올라 강강술래를 하면서 수군을 도왔던 것이다. 우수영 기념공원에는 이들의 활동을 기리는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다.
한 마디로 명량해전은 민과 군이 혼연일체가 되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 총력전이었다. 이순신은 1597년 10월 25일 난중일기 끝부분에 “이것은 실로 하늘이 돌본 행운이다”(此實天幸)라고 썼다. 실로 이 전투는 하늘과 땅, 귀신과 사람이 도와 승리한 총력전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스님들도 수도만 하고 앉아 있을 수 없어 분연히 일어섰다. 자운선사는 임란이 일어날 당시 여수의 흥국사에 머물던 승려였다. 그는 충무공과 뜻을 같이하여 왜적의 침략에 대비하여 흥국사와 그 주변의 암자에서 수도하던 승려 300여 명으로 의승수군(義僧水軍)을 결성하고 그 대장이 되었다. 의승수군은 성을 쌓거나 배를 만들고 해전에 참가하는 등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였다. 자운선사는 임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진중에 따라 다니기도 하고 승군대장으로서 의승수군을 이끌고 바다로 나가 많은 공을 세웠다.
한편 이순신 장군이 여수의 전라좌수영을 출발하여 경상도의 옥포와 부산포를 공략할 때에는 조선수군의 군함인 판옥선과 소형 협선 외에 포작선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민간 고기잡이배가 따라붙었다. 그들은 일부 무장을 하거나 군수품을 싣고 장거리 전투항해에 따라나선 민간 동원선으로 비록 전투력은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아군의 사기를 높이는데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적은 새까맣게 몰려오는 포작선 선단을 보고 기겁을 했을 것이 뻔하다.
이 모든 것은 오로지 이순신 장군의 능력과 인품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가장 위급한 시기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목숨을 걸고 싸운 조선 수군과 의병들은 이순신이 지휘하는 전쟁에서는 승리만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던 것이다. 장군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영웅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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