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올해 병무청에서 선정한 ‘병역이행명문가’ 에 대하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다. 병역이행명문가란 3대에 걸쳐 남자들 모두가 현역으로 군복무를 수행한 가문으로 병무청의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
그들의 병역철학을 다큐멘터리에 담아내고자, 그 주인공들을 만나고, 병역이행에 얽힌 사연을 취재하면서 필자는 그들의 일관된 소신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5월 초, 다큐멘터리 촬영이 시작될 무렵, 병역이행명문가 대통령상을 수상한 백동림氏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불만을 털어 놓는다.
“병역을 이행한 게 이렇게 표창 받을 일인가?”
군대를 가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병역을 애써 이행했던 그의 가문이 상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백동림氏는‘병역이행’을 올바른 성장을 위한 필수 과정으로 생각한다. 초등학교를 나오면 중학교를 가고, 이어서 고등학교에 가듯, 당연히 가야하는 곳이 군대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가문은 3대에 걸쳐 남자들 모두가 현역으로 병역을 이행하였다. 특히, 3대 백봉철氏는 시력이 좋지 않아 방위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통합병원에 통사정을 하여 현역으로 입대를 하였다.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군대를 가지 않거나, 좀 더 쉽게 군 생활을 하기 위하여 기를 쓰기 때문이다.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김상도氏가문에서도 비슷한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가문의 3대, 김광氏는 비만으로 인해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지만, ‘ 병역면제자는 곧 사회의 낙오자’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을 뺀 결과 현역으로 입대할 수 있었다.

우연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들 가문의 구성원 모두가 지금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요즘같이 불안하고 불확실한 시기에 어느 집이건 걱정을 끼치는 소위‘문제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들 병역이행명문가는 걱정할 만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이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이 사실은 병역이행이 행복한 삶의 충분조건은 될 수 없겠지만 필요조건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들에게 병역이행은 ‘국가와 민족을 수호하는 일’ 에 머무르지 않는다. ‘ 나’ 보다 ‘우리’ 를 생각하고 ‘단결과 협동’ 의 의미를 실천하는 일, 시련에 좌절하기보다는 ‘불굴 의지와 패기’, ‘도전정신’ 으로 시련을 극복하는 일이 바로 ‘병역이행’ 이다. 군 복무를 통해 함양된 ‘단결과 협동심’, ‘ 불굴의 의지와 패기’는 치열한 경쟁, 이기주의가 심화되는 사회를 헤쳐 나가기 위한 필수 항목이다. 결국, 병역을 이행하는 기간은 앞으로의 삶을 더욱 잘 살기위한 투자인 셈이다.

대대로 학식이나 벼슬이 높은 가문을 우리는 명문가라 불러왔다. 명문가를 좀 더 현실적으로 들여다보면 소위, ‘엄친집’, 풀어 말하면 ‘엄마 친구네 집’ 과 비슷하다. ‘아빠는 판사, 아들은 검사, 딸은 약사, 사위는 의사’ 인 집, 이른 바 ‘잘 나가는 집’ 이 요즘의 명문가가 아닐까? 이러한 집은 주위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고, 가족들도 가문에 대한 상당한 자부심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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