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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는 사회적 특수계층의 창설
반전·평화사상을 가진 양심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만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다면, 이는 헌법 제11조 2항에서 금지하는 사회적 특수계층의 창설과 다름없게 된다. 따라서 특수한 양심을 가진 사람에게만 병역거부를 인정하거나 후술하는 대체복무를 인정하는 발상도 역시 위헌적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소수자의 인권' 시각에서 볼 수 없게 만드는 소치이다. 소수자의 인권을 구실로 한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은 개인의 자유를 빙자한 공동체에 대한 의무의 방기를 묵인하고 결과적으로 다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국가가 있기는 하다. 독일, 오스트리아, 덴마크, 러시아, 폴란드, 스페인, 쿠바 등 40여개 국가가 있다. 이들 나라는 하나같이 주변국가로부터 전쟁의 위협이 거의 없는, 실로 안보환경이 매우 양호한 나라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인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한국은 지구상에서 이스라엘 다음으로 안보환경이 취약한 나라이다. 게다가 한반도는 지금 휴전상태에 있고, 지난 수년 동안 서해교전을 두 차례나 치루었다. 이러한 현실을 도외시한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 주장은 무책임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유엔인권위원회의 권고결의를 들어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해야 인권선진국이 되는 것처럼 말한다. 물론 모든 나라의 안보환경이 동일하다면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이 인권수준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보환경이 나라마다 천차만별인 상황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권선진국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결정적 기준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더불어 유엔인권위원회의 결의는 어디까지나 권고사항 내지 앞으로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이드라인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양심적 병역 거부는 우리 헌법체제 하에서 ‘권리'로 인정될 수는 없으며, 국방 내지 병역의 의무에 대한 중대한 ‘위반'에 해당된다. 현재 국방의 의무를 실시하기 위한 법률로 병역법 등이 제정돼 있고, 이 법 제88조 1항에서는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을 기피하거나 소집에 불응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이 조항은 병역법의 실효성 확보와 병역 정의 실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규정이다. 담당판사는 양심에 의한 병역거부를 동조에서 명시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된다고 판단하였으나, 이는 법리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하겠다. 정당한 사유란 관혼상제, 중대한 질병, 천재지변 기타 불가항력적 사유와 같이 누가 봐도 객관적인 정당성이 있는 사유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병역거부의 양심판단에는 주관성·자의성이 개입될 소지가 크다. 우리 사회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권리로서 공식 인정하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우선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라도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우리와 같은 분단국이었던 독일이나 지금도 중국으로부터 안보위협이 끊이질 않는 대만을 예로 들고 있다. 하지만 대체복무 역시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무리한 요구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 원정출산, 금품수수, 신체훼손 등에 의해 어떻게든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반전평화사상이나 종교적 양심에 의한 집총거부 등을 이유로 한 새로운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은 병역기피 풍조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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